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feat.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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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가능성들을 먼저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편이다. 그리고 완벽주의 경향도 심해서 쓸데없이 사소한 부분에 과하게 신경쓰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해서 엄격한 편이라서, 스스로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그냥 무언가를 잘 했으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잘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더 생각하는 편. 하지만 이것이 문제라는 것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자기검열을 잘 하는 편이니까 하하..) 예전에 교회 초등부 교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와 비슷하게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큐티 숙제(?)가 있는데 한 번 해오면 매일 해오거나 아무것도 안 해오거나 아니면 월요일, 화요일 정도만 해오던 아이. 왜 월요일, 화요일만 해오는게 완벽주의냐고? 절대 월요일, 화요일에 한 게 아니라 나중에 한 것인데 일단 매일을 다 한다는 목표로 분명 수요일에 시작해도 월요일부터 채우기 때문. 어머니한테 물어보니 내 예상했던 대로 완벽주의가 있었다. 금요일쯤에 하루라도 해보자고 해도 이미 늦었다며 하지 않으려 했다고. 나는 매주 초등학교 일기 검사하듯이 숙제를 제출하면 꽤 길게 아이들한테 편지를 썼는데 그 아이에게 꽤나 진심을 담아 단 하루라도 제출해서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러번 쓰고는 했다. 사실은 내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 아이가 일주일치를 다 해 오던 때보다도 하루 밖에 안 해오던 때가 더 기특하고 대견했다.

예전에 완벽주의가 아예 없는 아이와 같이 놀면서 큰 교훈을 얻었던 적이 있었다. 이케아에서 파는 큰 종이 두 장을 테이프로 이어 붙여서 아이가 그 위에 누워 있게 하고 나는 색연필로 몸 윤곽을 그려주고 나서 아이한테 그것을 마음껏 꾸미고 색칠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종이를 이어 붙이고 나서 뒤집지 않아서 정가운데 부분은 색을 칠할 수 없게 됐다. 얇은 투명 스카치 테이프여서 눈에 별로 띄지도 않았지만 나는 속상했다. 혼자 보면서 “아 이걸 뒤집었어야 했는데!” 하고 말했더니 아이가 날 보더니 하던 말 “Ist doch egal (상관없어요. 뭐 어때요)!” 그리고 그 아이는 정말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그림을 보고 꽤 좋아했고, 그 그림은 몇달동안 거실 벽에 붙어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이었으면 내가 가운데에 붙은 테이프를 못 참아서 벽에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볼 때마다 생각나서. 진짜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이상한 완벽주의를 가진 게 나다. 그래도 그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이렇게 작은 것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며 산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아이로 클까? 하고 많이 생각하고는 했다. 아니, 아직도 매일매일 성장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궁금하다. 나처럼 완벽주의가 있을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도 고민해보게 된다. 나처럼 완벽주의가 있는 아이라면 나를 다시 키우는 마음으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지? 하지만 일단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싶다. 반대로 나와 전혀 다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 자식이니 나와 닮은 점도 분명 많겠지만, 전혀 다른 점도 있을 수 있겠지. 그리고 사실 그 점이 더 힘들 수도 있겠다. 이해할 수가 없을테니. 내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내 방식대로 아이를 바꾸려는 엄마는 절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아이가 가끔 이유없이 짜증을 낼 때가 있다. 또 위험한 상황이라 제지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화내서 소리치는 것에는 오히려 반응을 안 하는데 내가 힘이 빠져서 “왜 그러는거야”하고 책망하듯이 말하며 쳐다보면 정말 상처 받은 표정으로 나를 다시 바라본다. 아이도 아는 것이다. 자신에게 실망한 표정이 어떤 것인지를.

한번은 평소에 너무나 잘 먹는 간식을 안 먹으려고 했다. 왠지 다른 음식과 헷갈려하는 것 같아서 정말 난생 처음 아이 입에 억지로 음식을 한 입 넣어줬는데 아이는 5분 가량을 그 음식을 씹지도 않고 세상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한번도 아이가 밥을 거부하면 강제로 먹인 적이 없었다. 항상 여러번 아이의 의사를 묻고 다 먹었다고 하면 음식을 치웠다가, 다시 달라고 하면 다시 갖다줬다. (아이들은 본인들의 마음을 잘 모르니 이랬다저랬다 한다. 사실 성인인 나도 가끔은 이랬다저랬다 하니 아이들은 오죽할까.) 음식을 먹여준 적도 거의 없지만 항상 “엄마가 먹여줄까?” 하고 먼저 물어봤다. 그리고 싫다고 말하거나 고개를 돌리면 안 먹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다짜고짜 자기가 싫다고 하는데도 음식을 입에 넣어주니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한테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때는 정말 어찌나 미안한지 결국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나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울었다. 당연히 아이가 하면 안 되는 것은 못하게 막고 엄격하게 훈육한다. 그건 아이가 아무리 짜증내고 울고 소리 질러도 전혀 미안하지 않다. 하지만 이건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니.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여러 감정이 있지만 적어도 자식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본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항상 자식의 의견을 100프로 존중한다. “네가 하는 결정이니 옳은 것이겠지. 너무 잘됐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남편과 내가 시청결혼식을 할 때 본인들이 와도 되냐고 물었었다. 물론 당연히 오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으니 물은 것이겠지만 그냥 그런 질문 자체가 신선했다. 결혼식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을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인데 결혼식에 가도 되냐고 묻는다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그랬다. 육아는 본인이 한 지 너무 오래돼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리고 우리가 방문할 때면 누구보다 열심히 모든 걸 준비해놓으시고, 먹는 것에 있어서 이런거 애들 먹어도 돼, 하면서 절대로 함부로 먹이지 않으신다는 것. 이건 흔하지 않다. 독일 부모라고 다 이러지 않는다. 독일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육아에 있어서 독일 부모들도 어찌나 오지랖과 참견이 심한지. 남편을 만나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이구나 느꼈다. 아니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무조건 나쁜 게 아니구나 하고 느낀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게으르고 못나도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남편이 자존감이 굉장히 높은데 그냥 있는 그대로를 어렸을 때부터 인정 받으면 그렇게 자존감이 높고, 또 다른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희망이 생긴다.

그래서 나도 아이를 그렇게 키워야겠다 다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지켜봐주는 것. 뭐 살다보면 세상에 상처 받을 일은 많을 것이고, 그것을 내가 다 막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형성하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함께 고민하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신뢰가 두터운 관계이고 싶다. 부모한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경험을 하면 그런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 나의 기대는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아이 흉을 본다. (흉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요즘 어찌나 고집을 부리는지 몰라, 얘 때문에 밤 한 숨도 못 잤어.등등) 아이가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나이인데도. 뭐 대수롭지 않은 말이긴 하지만 들을 때마다 내가 뜨끔한다. 아이가 듣고 있는데 괜찮을까? 다행히도 남편도 같은 생각을 가져서 우리는 아이가 있는 앞에서 절대 아이 흉을 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이가 어떤 성향의 아이일 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끊임없이 말해주고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너를 언제나 사랑해,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해, 너는 그 자체로 완벽해. 실수해도 괜찮아. 원래 그러면서 크는 거야. 너는 다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다 잘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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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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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 처음에 완벽주의 이야기 읽으면서 내가 쓴 글인가 했다가, 애기 앞에서 흉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에서는 저도 응급실에서 엄마 아빠들이 애 앞에서 말을 너무 거침없이 하는 걸 보고 철렁했던 적이 있는지라 공감하다가, 애기 밥 먹이는 얘기 들으면서 아구 어떡해 하면서도 애 키우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수수씨가 본인 자책 너무 많이 하신 건 아닐까 걱정하다가, 역시 남편분이 좋은 분인건 가족이 저렇기 때문인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 공감하고 공감하면서 너무 재밌게 읽었어용♥️

미나씨 시험 끝나면 꼭 만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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