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세 돌이 넘을 때까지도 울거나 떼를 쓴 적이 거의 없어서 신기했는데, 요즘 들어 자기 주장이 강해지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울고 짜증을 낼 때가 많아졌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심한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이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새로운 변화다. 이제는 아이가 말도 잘 하고 자기 표현도 잘 하는데, 아무리 물어봐도 무작정 울기만 하는 아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공감해주고 다정하게 얘기를 들어주려다가도, 결국 내 인내심이 바닥나고 폭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대신 아이가 울거나 짜증을 낼 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상황을 설명하는 잔소리식 대응이 의외로 효과적이었다. 성인인 나조차 생리 주기 때 이유 없이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아이의 감정 기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래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힘들긴 하다.
두 돌 이전부터 아이에게 꼭 가르치고 싶었던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싫어하고 순한 기질이어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아프게 한 적은 없다. 다만, 어릴 때 기저귀 가는 것을 거부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 발길질을 하며 나를 아프게 했다. 남편은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단호하게 훈육하며 폭력이 잘못된 것임을 가르쳤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어린 애가 뭘 안다고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둘은 그게 중요한 교육방침이었고 그 결과인지 아이는 다른 사람들한테 의도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는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지난 2년동안 아이가 남한테 사과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아예 없다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사과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를 실수로 넘어뜨리거나 나뭇가지로 치는 일이 있으면, 상대방이 괜찮다고 해도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시켰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이런 교육이 의외로 부족한 것 같다. 길에서 부딪히면 사과는 잘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사과를 잘 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 사이에서는 부모가 사과를 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 놀랄 때가 많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낯선 아이가 우리 아이를 갑자기 때렸는데, 그 아이의 부모는 “왜 그랬니?”라고만 담담하게 말 할 뿐 사과를 시키지 않았다. 적어도 부모가 대신 사과할 줄 알았는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서 너무 놀랐다. 우리 아이가 그랬다면 나는 즉시 사과시키고 호되게 훈육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 정말 자주 있었다. 이런 경험을 겪다 보니, 공감형 육아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훈육 없이 자라면 버릇없고 이기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사랑받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는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 아이는 잘못을 하면 “엄마 미안해”라고 자주 말한다. 자신이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린 후 진정되면 와서 “엄마 미안해”를 연발한다. 예전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극도로 거부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내가 먼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자주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평소에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또 “엄마는 너를 사랑해”라고 자주 표현해 주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로 변해갔다. 예전에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애가 나한테 이렇게 막 짜증을 내는데 나도 인간인데 짜증이 나지’라는 생각 때문), 최근 들어 내가 다른 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서 아이에게 그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는 내가 부당하게 행동한 것이니 바로 사과를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사과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 같다. 또 어린이집에 늦을 때는 주로 내 잘못이었는데 아이 앞에서 아이 잘못이 아니라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나서 그렇다고 선생님들한테 설명을 하는 등 잘잘못은 확실하게 따져서 내가 잘못했을 때는 깔끔하게 인정을 했다. 그것을 보고 아이는 사과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나는 솔직함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생각한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거나, 앞과 뒤가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도 내가 완벽하거나 늘 좋은 엄마인 척하고 싶지 않다. 엄마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고, 화가 나면 화가 나고 슬프면 슬픈 것처럼, 나의 솔직한 감정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소통하고 싶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에 비해 약자다. 부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고,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는 상황도 많다. 또 부모의 쓸데없는 감정 분출은 소통이 아니라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부모가 명확한 기준과 선을 제시하고, 그 기준을 아이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부모가 그 선을 넘었을 때는 아이에게 사과해야 한다. 아이를 나의 소유물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대한다면,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과하는 게 맞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솔직함이고, 나는 이러한 태도에서 진정한 권위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 실수할 때마다 진심으로 아이에게 사과하고, 그 결과 아이와 나는 “미안해” 배틀을 벌이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아이에게 말한다. “엄마는 너를 사랑해. 엄마는 네가 항상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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