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초, 인턴이 끝났다. 마지막 날 눈물 펑펑 쏟을 정도로 팀에 정이 많이 들었고 배운 것도 많았다. 심지어 월요병도 없이 일하러 가는게 매일매일 즐거웠다. 물론 하루에 세시간 가량을 이동시간에 쓰는 건 너무 힘들었다. 난생 처음 폐렴에 걸려서 삼주간 고생하고 그 후에도 한달에 한두번은 아프고 남들 감기 걸리면 나도 어김없이 감기 걸리고…운동도 안 해서 건강이 나빠지는 게 매일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마 이런 엄청난 단점 때문에 인턴이 끝난 걸 조금이나마 기뻐할 수 있다.
나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회사생활이 나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매일 하기도 싫은 회식하고 야근하고 상사 비위 맞춰주면서 살살 기어야 하면 할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내 성격상 정말 안 맞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는 그런게 정말 없었다. 팀 이벤트 있을 때마다 제일 신나서 다 참여하고 왜 더 자주 이런게 없나 아쉬워한 사람도 바로 나다. 부서에서는 다들 서로 이름만 부르고 반말을 했는데 그렇게 격없이 지내다보니 가끔씩 내가 내 의견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국이라면 애초에 권위에 눌려서 아무말도 안 했겠지.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싶다가도 막상 또 그런 상황 오면 내 의견을 피력했다.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인 것 같다. 그래도 그런 모습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것 같다. 일하면서 내가 어떤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일 잘 해서 무조건 좋은 Arbeitszeugnis(독일에서는 일하고 나면 일종의 성적표를 받는데 기업에서는 이걸 매우 중요시한다.) 받아야겠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내가 일 잘하는 걸 보여줘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나중에는 그런 생각 안 하고 직장동료들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그냥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는데 마지막에 성적표도 굉장히 좋았고, 다른 동료들한테 칭찬을 많이 받았다.
좋았던 만큼 고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어느 회사든 상관 없고 그냥 적당히 먹고 살 정도만 벌고 대신 가족하고 보낼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대기업이 근무조건이 더 좋은 것이었다….돈도 많이 주는데 워라밸도 좋다. 게다가 독일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독일인들과의 인간관계에도 약간 회의를 느꼈는데 확실히 사회경험 많고 외국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달랐다. 그리고 이건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워낙 커넥션이나 평판이 중요하다보니 다들 서로 잘 지내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본 일부지만. 그래서 너무 좋은데 대체 여기를 어떻게 들어오지 막막해졌다. 다들 여기서 일하고 싶어하고 다들 능력도 좋을텐데 거기서 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다른 인턴 한 명은 운 좋게 정규직 자리를 구했는데 만약 내가 이미 구직하는 상황이었다면 아직 생생한 커넥션이 있을 때 자리를 구하기 쉬웠을텐데..(물론 그것도 엄청난 타이밍과 운이 따라줘야 하지만..ㅠ_ㅠ)
원래는 이번 해에 2세 계획이 있었는데 갓난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서 간접적으로 생활이 어떤지 적나라하게 보니 결정 잘 해야겠구나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외이민을 새로운 성공의 기회로 보지만 나는 철저히 한국의 경쟁사회가 싫고 미래의 자녀들은 깨끗한 공기 마시며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냈으면 해서 온거였다. 말 그대로 지난 몇년간은 ‘커리어가 뭔 상관, 나는 다 버리고 왔다!’라고 생각하면서 (딱히 한국에서 성공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살아왔는데 막상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오니 너무 헷갈렸다.
여러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고 남편과 상의해 본 끝에 자녀계획은 우선 미루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로 했다. 남편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는 항상 무슨 결정을 하든 내 마음과 생각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해왔다. ‘할까, 하지 말까’ 하는 기로에 서 있을 때 사람들마다 다른 결정을 하지만 나의 경우는 ‘안 해서 후회할 것 같으면 우선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지난 몇 년을 살았는데 그렇게 사니까 너무 좋다. 사실 어떤 결정의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다른 의견에 흔들려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쓸데없이 미련이 남고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도 생긴다. 결국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다른 핑계를 대는 것. 그리고 현재의 선택에 대해서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가지 못했던, 선택하기를 포기했던 다른 선택지에 대한 미련을 떨치는 게 너무 어렵다. 그러면 어쩌면 지금 차선으로 선택했던 이 길이, 절대적으로 (그런 게 존재한다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는데 계속 다른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온전히 못 누리고 행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이 허락한다면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한다. 남편이 나의 선택을 전부 존중해주고 지지해줘서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독일에서 살면서 오히려 다양한 방면으로 길이 열린 것 같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안 했을 텐데. 다행이다. 용기를 내서.
Blog Comments
daaehkim
March 6, 2019 at 2:41 am
인턴 잘 끝냈다니 다행이고,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어서 또 다행이네 🙂 깨끗한 공기(…)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요즘이고 나도 요즘 공부할 때 몰랐던 나의 성격적 특징들을 알게 되어서 일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는 기분이야 ㅋㅋㅋㅋㅋ 파이팅 수수
Sue
March 6, 2019 at 9:05 am
요즘 미세먼지 진짜 심하다며 ㅠㅠㅠㅠ 그래서 내 생각 나서 블로그 왔지?ㅋㅋㅋㅋ너도 화이팅이야! 너의 새로운 자아는 어떤 것인지 매우 궁금하구려
융듀
April 23, 2019 at 11:16 am
인턴이 무사히 끝났구나! 수고하셨습니다 🙂 네가 밝은 에너지가 있어서 좋은 사람들이 모인 거라 생각해
Sue
April 28, 2019 at 3:45 pm
고마워 융듀💕 나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운이 많이 좋았던 것 같앙 요즘 댓글은 안 남기지만 항상 잘 읽고 있어. 정말정말 응원해!
Zug
June 6, 2019 at 11:21 am
린다우 여행가려고 블로그 보다가 들렸습니다. 전 지금 뮌헨 BMW에 있어요 가방 보니 반갑네요^^
Sue
June 6, 2019 at 1:38 pm
앗 그러시군요! 회사가 크다보니 은근 주위에 많이 있더라고요. 저는 너무 좋은 기억뿐이라 왠지 부럽네요ㅎㅎ 린다우 여행 즐겁게 하시길 🙂
Joey
July 11, 2019 at 12:38 pm
안해서 후회할거면 일단 해보자 너무 좋아요.
하고 싶은것 하면서 사는것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