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생존신고

성금요일에 올린 Art of the Day를 제외한 마지막 포스팅이 1월말이라니. 의도치 않게 잠수 탄 것처럼 되었다. 올릴 사진도 많고 할 말도 많지만 밀린 것을 올리다보면 왠지 한없이 밀릴 것 같아서 사진은 생략하고 그냥 할 말만 일기장 쓰듯이 써보려고 한다.
 
매 학기 대다수의 대학생이 가지는 생각은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시험기간: “내가 다음 학기부터는 진짜 평소에 열심히 공부할거다! 방학때부터 공부 조금씩 해둬야겠다” -> 방학: “아 방학때는 놀아야지. 만사 귀찮다. (뒹굴뒹굴. 방학마다 잉여력의 한계치를 끌어올림)” -> 방학 끝무렵: “너무 게으르게 지냈더니 후회되고 심심하다. 학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 개강: “내가 지난주에 무슨 생각을…다시 방학이 되었으면…(그리고 평소에 공부 따위 하지 않는다) -> 시험기간……….스트레스 폭발
 
그런데 지난 학기는 시험기간 스트레스가 유독 심했다. 처음으로 학과에서 일하게 되면서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할 시간이 생기면 공부 대신 일을 했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싶었던 1월에 감기에 걸리면서 몇주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1월초부터 피부에 뭐가 나기 시작했는데 그게 점점 번지더니 시험 기간에는 더욱 심해졌다. 심각하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때때로 엄청 가려워졌고, 처음에는 괜찮다가 점점 몸에 퍼져나가니까 이거 무슨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피부과 예약하려고 하니까 죄다 2달은 기다려야 했고, 그렇다고 응급실 가야 할 정도는 아닐 것 같아 그냥 버티자- 하는 심정으로 버텼다. 예약없이도 무조건 기다리면 될 것 같기도 했는데 시험기간이니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시험 끝나고 한국을 갔기 때문에 거기서 치료 받으면 되겠지 싶어서 약국에서 연고만 처방받고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게 정확히 필요한 연고였다!) 시험기간을 버텼다. 
생각해보니 첫학기 때도 피부에 이상이 생겨서 엄청 고생했는데 (심지어 그때는 면역체계?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강한 약을 처방받아서 심리적인 타격이 엄청 컸다) 독일 온 이후로 내 면역체계의 이상신호는 피부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다. 옛날에는 무조건 편두통이었는데 뭐가 더 나은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시험기간에는 집에서 공부하면 음식도 매번 해먹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어서 문제가 더 심화되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검진을 받았더니 장미빛 비강진이라는 피부병이었다. 물론 건선, 알레르기 등 가는 의사마다 진단이 달랐는데..^^………증상에 대한 설명이나 치료법에 따른 개선 정도를 봤을때 저 장미빛 비강진이 맞는 것 같다. 광선치료나 다른 약으로도 치료 가능하지만 일정 기간되면 자연스레 치료된다고…오래 걸리면 세달이랬는데 나는 네달도 더 되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나았다.
 
아무튼 지난 학기는 정말 너무 심각한 스트레스였고, 계속 공부 많이 못하다가 나중에는 급하니까 시험기간에 하루에 10시간 공부한 적도 있다. 시험 과목수도 많았고, 무엇보다 통계시험은 내가 이미 거기서 일하고 있고 내가 채점자들을 다 아니까 너무 부담스러웠다. 통계만큼은 그래도 100시간 정도 공부했던 것 같은데 시험 당일에 멘붕이 와서 오히려 쉽게 생각했으면 금방 풀릴 문제를 무작정 계산하려고만 하다가 망쳤다. 어떤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는데 이거를 채점하면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은 마음에 정말 2주간은 고개도 못 들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필 시험 끝나고 같이 일하는 박사과정 조교가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투정 부리고 하소연하고ㅋㅋㅋㅋ그 친구도 채점하는데…;; 그 날은 잠도 안 오고 시험 기간 내내 하루에 최소 열번씩은 망친 통계학 시험 생각하느라 우울해졌다. 여기서 조금 재수없는 반전은 그래도 점수가 1.0이 나왔다는 것이다 ㅋㅋㅋㅋㅋ…시험결과가 발표된 날 다른 조교님이 축하한다면서 문자를 보냈다 ㅋㅋㅋㅋㅋ그분한테는 징징대지 않았지만 내가 너무 우울하다는 걸 다른 조교를 통해 들었겠지. 박사과정 친구는 내가 내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것 같다고, 솔직히 채점하는 자신들도 학생으로 시험 봤을 때 다 맞지 않았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거라고 위로해줬는데.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내 스스로에게 실망이 너무 컸던 시험이었다. 시험 한두번 보나, 스트레스 관리도 실력인데..아무튼 오랜만에 수능 정도의 부담감을 안고 본 시험이었고 그 여파로 이번 학기에는 내가 일하는 세부학과 수업은 하나도 안 듣는다^^..
 
시험 끝나고는 일주일도 안 되어서 한국을 갔는데 시험 끝난 주말에는 튀빙엔에 있는 친구들 방문, 월요일에는 한국에 사 갈 것들 구매 + 이케아. 화요일에는 짐싸기 수요일에는 한국행. 그래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한국으로 갔다. 더 문제였던 것은 새벽까지 짐 싸느라 세시간도 못 잤고,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라 뮌헨 가는 기차가 없어서 택시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다른 팀과 같이 가는 거라 비행기 시간보다 세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영국항공이 워낙 저렴하게 풀려서 (왕복 450유로!) 처음으로 독일-한국 노선을 직항이 아닌 경유를 이용했는데, 경유시간이 세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인천공항에서 부모님 집까지 ktx 타고 갔는데 기차가 자주 없어서 그것도 기다려야 했고, 이동시간도 거의 세시간인가…집에 도착해서 짐을 딱 풀고 생각해보는데 우리가 독일에서 집을 나선지 24시간도 더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허탈해서 웃음만. 원래는 자동차든 기차든 버스든 어디에 앉기만 하면 잠 드는데 비행기는 다리를 못 펴 불편해서 그런지 많이 자지를 못한다. 아마 이틀동안 8시간도 못 잤을 거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한국 가는 김에 다른 아시아 국가도 가자고 얘기가 나왔었고, 그래서 대만 여행을 갔다! 한국 도착한지 이틀 후에ㅋㅋㅋ다시 한국 돌아와서 하루 쉬고 오빠 결혼식 때문에 서울을 갔는데 이상하게 도로 곳곳이 공사중이어서 오래 걸려도 3시간이면 갈 거리를 6시간이나 걸려서 갔다ㅋㅋㅋㅋㅋ하…초토화. 결혼식은 정말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웠고! 하지만 정신없었고! 우리는 하루 서울에서 더 보내고 제주도로 갔다. 부모님은 이틀 함께 하시고 우리는 이틀인가 더 있고. 그리고 하루 쉬고 남편은 다시 독일로. 남편은 2주반동안 (경유를 각각 2번으로 치면)비행기 8번을 탔다 ㅋㅋㅋ 남편 인천공항 배웅하고 나는 서울로 향했다. 학교 근처에서 다른 친구들과 자취하는 (나도 전부 아는 학과 선후배) 친구 방에 머물면서 ‘일상’적인 삶을 회복했는데 피부 검진 때문에 예상보다 빨리 다시 부모님댁으로 가야 해서 슬펐고. 부모님과 함께 하는 건 좋지만 그때 일이 너무 많으셔서 사실상 시간을 같이 보낸다기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있었다. 그래도 맛있는 거 엄청 많이 먹고 정말 잉여롭고 행복한 방학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독일을 왔는데 밀려있던 학과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개강 전까지 정신없이 일을 하고 개강하고도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다. 덕분에 라텍을 어느정도 익히긴 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은 점은 컴공을 하지 않은게 참 다행이라는 것? 어딘가에 기호 하나 빠뜨렸다고 내용 전체가 실행이 안 되는 것은 너무 절망적이다. 수학 수식을 입력하는 게 편하다는 것 빼고 무엇이 좋다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힘들다. 레이아웃 바꾸는 것도 복잡해 표 삽입도 불편해 그림 삽입했는데 공간 충분하지 않으면 다음 페이지로 밀리는데 그것도 바로 다음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임의적으로 어딘가에 배치되고..게다가 운영체제마다 조금씩 달라서 맥으로 편집한 조교 컴퓨터에서는 되는데 내 컴퓨터에서는 안 되고 왜 안 되는 것인지 무슨 패키지 영향인지는 한참 검색해봐야 나오고. 정말 워드가 너무 그리웠다…… 왜 윈두우가 생긴 것이 혁신적인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되고. 마우스로 아이콘 클릭해서 편집하는게 얼마나 직관적인지…바꿔야할 내용은 간단한데 그것 때문에 몇시간을 허비(?)하는 내 자신이 슬펐다. 그래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하다못해 논문 쓸 때 도움이 되겠지. 개강 2주차인데 20시간 넘게 일했다. 아직도 할 일은 많고…지난번 계약시간이 많이 남아서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맡은 일까지 하면 그 시간 다 쓰고도 남을 것 같다. 죄책감은 안 가져도 되니 다행인것인가ㅎㅎㅎㅎ내가 듣고 있는 수업 예습/복습, 내가 맡은 수업 준비를 하고 싶은데 으아ㅏㅏㅏㅏ 모르겠다. 그래도 학기 초에는 어차피 공부 안 했을거니까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이제 블로그에는 충분히 징징댔으니 현실세계에서는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것으로!!!
이상 대략 세달반의 근황 + 현재 내 마음상태에 대한 보고 끝. 아마 블로그는 자주 못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진 같이 올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되면 한 포스팅에 5시간 정도는 걸리니…대신 요즘 인스타그램에 맛들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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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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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Comments

나도 나한테 기대가 많아서 평소에 심하게 징징거리는데 역시 니 성격이랑 나랑 비슷한 점이 많은듯 ㅋㅋㅋㅋ 잘 살고 있군!

블로그를 얼마나 방치했으면 이 댓글도 이제서야 허허허 그때 우리 잠깐 얘기했던 것 같은데 매일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하는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 그런데 벌써부터 잘 안 되고 있다는ㅠ_ㅠ 이번달부터는 정신 차리고 해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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