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쇼핑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워낙 선택을 못 해서 한참 구경만 하다가 결국 안 사기 일쑤, 또는 관심이 없는 품목에 대해서는 약간의 지출도 돈 아까워함) 기분이 안 좋을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역시나 쇼핑이다. 왜 돈을 쓰고 나면 기분이 좋은걸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잘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한 심리이다.
다행히도 비싼거에는 관심이 없다. 핸드백, 신발, 옷 이런거 다 무관심. 한국에 있을 때도 일년에 옷 한두개 사는 게 전부였고 심지어 10년이나 된 남방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래도 최근 몇년간 독일-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갖고 있는 옷을 여러차례 처분했는데 그러다보니 정말 입을 옷이 없는 사태가 발생. 게다가 여기 대학에서는 같은 학년 애들과 매일 같은 수업을 듣고 있으니 아무래도 계속 같은 옷 입으면 이상할 것 같아서 작년에 독일 오고 나서부터 망고에서 가끔씩 블라우스 하나 사고는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품질이 심각하게 안 좋아서 그마저도 요즘은 안 한다. 환불은 되지만 툭하면 올 나가고 툭 하면 단추 떨어지고 …..그거 교환하러 가는 것도 일이다 :( 디자인은 무난하게 괜찮고 내 취향인데 흑흑. 과연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릇 욕심도 딱히 없는데 Villeroy&Boch 가게는 지나갈 때마다 자동으로 눈이 막 돌아간다. 아 갖고싶어라. 어쩜 다 예술작품처럼 예쁠까. 가장 사치 부린게 (사실 남편이 사준 것이지만 결국 그 돈이 내 돈…과 다를 바 없으니ㅋㅋㅋ) 저 새 시리즈 잔을 산 것.볼때마다 너무 예뻐서 뿌듯하다ㅋㅋㅋㅋ 그런데 요리를 자주 하지도 않고 싫어하다보니 그릇을 새로 살 명분이 별로 없다. 부엌도 좁고 새로운 그릇이나 컵을 보관할 공간이 전혀 없어서 자동으로 소비 방지. 이런걸 보면 미니멀한 삶은 우선 집이 작아야 가능하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우리 집이 수납공간이 심각하게 부족한데 그러다보니 새로운 물건을 사려다가도 ‘근데 이거 어디다 보관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대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아무거나 사지 않고 조금 더 비싸더라도 귀엽고 예쁜 걸로 산다. 남편은 그런 나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냥 제대로된 기능만 하면 되지, 굳이 두세배 되는 가격의 것을 사야 하는지..) 그게 또 남녀차이가 아닐까 싶다. 내가 그 순간에 몇푼 더 낸 것은 나중에 기억나지도 않는데 두고두고 볼때마다 기분 좋아지면, 그게 더 가치 있는 거 아닌가?..라고 변명해본다ㅋㅋ
지난달에 이 세가지를 동시에 새로 샀다. 커피머신은 원래 있었고 밑에 있는 주전자(?)가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남편이 실수로 박살내는 바람에 새로 사야 했다. 새로 사는 김에 캡슐커피나 드롱기 같은 비싼 기계를 살까 잠시 고민했지만 남편이 커피를 안 마시므로…..욕심내지 않고 그냥 필터로 내려마시는 걸로. 어차피 커피맛을 잘 구별 못 할 것 같아서.
남편과 나는 저녁을 정말 간단하게 먹는 편인데, 주로 스프를 먹거나 바나나쉐이크를 해먹었다. 집에는 핸드믹서기 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제대로된 스무디를 해먹으려고 믹서기를 새로 샀다. 코코넛우유, 망고, 시금치와 온갖 슈퍼푸드 가루를 섞어서 한달 정도 열심히 해먹었는데 역시 내 성격에…그새 또 질렸다. 그리고 새척하는게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유리라서 너무 무겁기도 하고. 그래도 과일 잘 안 챙겨먹었는데 재료 사면서 제철과일도 사서 넣고 전보다 건강하게 먹는 것 같아서 혼자 만족하고ㅋㅋ 문제는 남편이 이런걸 어떻게 먹냐며 꿋꿋이 본인이 늘 만들어 먹던 바나나쉐이크만 마신다. 그래도 마셔보라고 계속 잔소리하게 되는 상황에서 엄마가 문득 생각났다. 항상 영양소 얘기하시면서 이건 뭐에 좋고 이건 뭐에 좋고. 저번에는 흑마늘도 반강제로 먹고 그랬는데…그때는 그렇게 그 말이 듣기 싫었는데 이제 조금씩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정말 편식이 심하다ㅠ_ㅠ 웃긴건 본인은 뭐든 잘 먹는 줄 안다.
한식을 잘 안 해먹어서 전기밥솥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자꾸 밥이 먹고 싶어서 아마존으로 하나 샀다. 쿠쿠 같은 한국 밥솥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지만 없다가 있으니까 확실히 편하다.
남편이 시부모님한테 생일선물로 라끌렛 기계를 선물 받았는데 서점 갔다가 저런 레시피도 있길래 한번 샀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너무 번거롭고 심각하게 짜고 ㅠㅠ 시부모님이 선물해주신 기계 성능이 너무 안 좋았다. 나중에 아마존 후기를 보니 별이 하나다. 흑흑. 기름진거에 질려서 건강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여서 채식 요리책도 샀는데 역시나…보지를 않았다. (하…나란 인간)
그래도 저 옆에 있는 커피는 열심히 마시고 있다. 딱히 원두의 맛은 구분 못 해도, 향은 정말 다르다. 킁킁대면서 혼자 기분 좋아함ㅋㅋㅋㅋ 이런걸 보면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특별히 거창한 게 아니다. (물론 이런건 너무 일시적이긴 하지만..)
독일에 싸고 좋은 핸드크림이 많지만 록씨땅만 쓴다. 이런건 정말 사치라고 부를만 한듯. 여기 향이 너무 좋아서 바르고 나면 막 행복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핸드크림을 자주 쓰진 않아서 꽤 오래 간다. 록씨땅 회원가입 했더니 이틀에 한번꼴로 할인코드가 메일로 날아온다.그 중 상당수는 50유로 이상 구입하면 뭐를 공짜로 주는 거라 해당사항이 없지만 간혹가다15유로 이상 구매하면 선물을 주는 것도 있다. 저번에 선물 사러 갔다가 저 컵과 핸드크림 하나 (보통 7유로씩 하는)도 공짜로 받았다.
하지만 독일 와서 부리게 된 가장 큰 사치는 뭐니뭐니해도 꽃다발 사는 것.
정말 이 꽃다발은 역대급으로 예뻤다.ㅠㅠ
보통 이런 꽃다발은 15-20유로 정도 한다. 원래 연애할 당시에는 남편이 슈퍼에서 항상 꽃을 사와서 선물해줬는데, 로맨틱하고 좋은 것과는 별개로 그렇게 예쁘지는 않았다.ㅋㅋㅋㅋ그래서 이제는 내가 꽃집 가서 스스로 고르고 스스로 구매한다.
그런데 참으로 한결 같은 취향. 장미에 안개꽃ㅋㅋㅋ 사실 다른 스타일도 여러번 도전해봤는데 항상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줄기가 지나치게 짧다. 장미가 먼저 져서 ‘재활용’함ㅋㅋ
친구집에 초대 받았을 때 선물로 들고 간 꽃. 원래라면 저 흰색 꽃(아마 카모마일인듯?)을 절대 선택 안 했을텐데 친구 취향은 다를 수도 있고 장미와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해서 선택. 결과는 대만족. 친구도 엄청 좋아했다. 친구 집에 꽃병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유리잔에도 넣을 수 있게 다발을 짧게 해서 갔는데 아니나다를까 꽃병이 없었다. 친구가 남편한테 “우리 꽃병이 있나?”하고 묻는데 그 남편이 “그런게 우리 집에 있을리가 없잖아”ㅋㅋㅋ그 순간 ‘거봐. 나만한 남편/남친 없다니까’하고 생색내는 남편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이 예쁜 꽃은 맥주잔에 들어갔다는 웃픈 비화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남편은 굉장히 바이리쉬 하다며 잘 어울린다고ㅋㅋㅋㅋㅋㅋㅋ ^^;;;;
작약부케 사진들을 본 이후로 작약에 대한 기대가 커져서 여러번 사봤는데 얘네는 너무 거대해져서 오히려 예쁘기가 힘든 것 같다. 특히 장미와 같이 샀을 때 정말 뭔가 난감한 조합.
연초에는 2주에 한번꼴로 꽃다발을 사러 갔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너무 과소비라서 최근 몇달간은 자제했다.
지난주에는 손님이 와서 오랜만에 아주 마음 편하게 :) 작은 꽃집이라 꽃 종류가 많지가 않은데 며칠 전에 가서 보라색 장미꽃을 미리 주문해놓고 당일날은 시간이 없어서 남편을 보냈는데 꽃집 언니가 정말 정확하게 내 취향으로 만들어줬다.역시 이래서 단골이 좋은거지.
Blog Comments
river
December 1, 2016 at 10:54 am
저 여기 너무 댓글달고싶어서 컴퓨터로 들어왔어요 ㅋㅋㅋㅋ 저 컵들 넘 예뻐요!!! 작년에 이사하면서 컵이 하나도 없어서 마트에서 하나 싼걸로 산 적 있는데, 예쁘지도 않고 너무 두껍고 맘에 안들어서 … 앞으론 비싸도 딱 맘에 드는 브랜드에서 시리즈물을 하나씩 사기로 마음 먹었어요 (근데 생각보다 비싸서 아직 시작 안함 ㅋㅋㅋㅋ) 그리고 정말 필요한 것들은 내 형편상 젤 괜찮은 걸 사서 오래오래 기분 좋게 쓰는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자들은 그냥 당장 눈앞에 저렴한 걸 사는게 낫다고 생각하나봐요ㅠ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함만큼 당장의 기분을 좋게하는게 없는데, 그걸 이해해주지 못하면 본인들만 힘들어진다는걸 모르는건지^^….. ㅋㅋㅋㅋ
Sue
December 1, 2016 at 9:16 pm
컵이나 그릇은 비싼건 정말 비싸서 막상 사려해도 지갑이 잘 안 열리는 것 같아요. 원래 저 컵도 남편이 한개인가 두개인가 생일선물로 사준 거였는데 갑자기 삘이 꽂혀서 나머지도 사달라고 해서 얻게 된 건데 (한번 지갑이 열리기만 하면 돈이 줄줄 새는ㅋㅋㅋㅋㄱ)제가 그냥은 하나도 안 샀을 것 같아요.사실 몇달간 쇼윈도우로 보면서 계속 갈등했거든요^^;;
아 댓글 마지막 말ㅋㅋㅋㅋㅋㅋㅋ너무 공감가서 한참을 웃었네요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