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1월 12일은 국사책에 (‘누군가’의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쓰여진 국정화 교과서가 아니라면^.^)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11월 19일, 11월 26일 또는 다른 어떤 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 시기가 어떻게든 기록은 될 것이다. 물리적 거리로 인해 그 역사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사는 아욱국 근처 뮌헨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한국에서 집회를 하고 있을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페북에서 전세계 재외동포들도 집회를 연다는 글을 보았고, 갈까?말까?하고 갈등을 했었다. 원래는 바로 전날 뮌헨에 사시는 분을 보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던 상황이었고, 남편과도 토요일에 전시회를 보러 가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틀 연속 뮌헨을 왔다갔다 하는게 재정적으로 부담이 됐었고, (게다가 집회가 한시간인데 그 한시간을 위해 두시간을 왔다갔다 하는 것도 그랬고..) 남편과의 데이트를 취소하는 것은 별거 아니긴 하지만 이미 지난주에 가기로 한 걸 내가 한주 미뤘던 상황이라 조금 미안했다. 게다가 집회가 있다는 글만 올라오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뭐를 준비해야 하는지, ‘주최’가 있기나 한건지 명확하지 않아서 ‘나 혼자 갔다가 무언가를 주도해서 해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다. 몇명이나 모일지도 불투명했다.
그런데 어느순간 이런 내 고민이 너무나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우연히 전날 약속이 취소가 됐고, 주최(European Network for Progressive Korea) 페북 페이지도 베리에 있었고 주최측에서 팜플렛을 전부 준비하니 몸만 오면 되는 거였다. 모든 ‘핑계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 개판이라고, 정치 정말 후진적이라고 말로는 그렇게 욕하면서 정작 내가 지금껏 한 것은 무엇이 있나 생각해보니, 그들이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 바로 나 같은 못난 국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물론 절대로 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집회였고, 개인 사정으로 참석 못/안 했을 수도 있는 거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니. 그러나 적어도 내 자신을 돌아봤을 때 이 집회에 가지 않는다면 정말 너무 부끄러웠을 것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한 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가로놓여 있다.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너어스들 앞에서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이발쟁이에게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이것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이 시야말로 내 정곡을 찔렀다. 물론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죄다 분개하는 성격이지만ㅋㅋㅋㅋㅋㅋㅋ(이러니까 성격파탄자 같네) 이것저것 전혀 본질적이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머리속으로 따지고 있는 내가 얼마나 모래 같고 먼지 같았는지. 부끄러운 정치인들이야 어쩌지 못하지만 부끄러운 국민은 되지 말야겠다 다짐했고, 이렇게 집회라도 참여하는 ‘사소한’ 행동부터 실천해야 내가 좀 떳떳하지 않겠나 싶었다.
시국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긴 했는데 가보니 생각보다 더 많이 왔다. 한 100명 정도? 물론 많지 않은 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프푸나 벨린에 비해 이 지역 교민 수 자체가 적은 것 같다. 주최 측에서도 예상외로 많이 왔다고 했고. 오데온스플라츠에서 OUT이라고 적힌 빨간 종이를 들고 한시간 가량 서 있었다. 중간에 자유 발언도 있었고, 박근혜 하야! 구호도 외치고, 애국가와 아리랑도 부르고. 소소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사진도 찍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관심을 가져줘서 기뻤고, 나만 이렇게 속상하고 힘든게 아니고, 독일 나와서 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나라 현실에 정말 마음 아파하고 분노하고 있구나- 한편으로는 든든하면서도 참 서글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불렀는데 (솔직히 가사 좀 헷갈렸는데 사람들이 부르는 한단어만 들어도 자동으로 따라 불러지는 신기한 현상)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나라 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전부 다 외우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어릴때부터 매주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키고, 음악 시간에 국가 시험도 자주 보고, 우리나라 대단한 나라라고 ‘한강의 기적’이니 뭐니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면서 컸는데. 어느순간부터 우리나라가 ‘헬조선’으로 불리고 비하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이 현실이 누구 탓인지. 그게 의지와 열정이 부족한 젊은이들 탓이야?
지나치게 감성적인 내 성격에 또 혼자 엄청 울컥해서 눈물콧물 질질 짠 건 안 비밀. 그래서 끝나고 뒷풀이가 있었는데 내 모습이 너무 민망하기도 하고ㅋㅋㅋ 나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서로서로 아는 사람들이 좀 많은 듯하여 몰래 빠져나왔다.
항상 뮌헨 가면 무조건 들르는 ‘타쿠미’. 아욱국은 아시안 Imbiss와 인도 음식점은 정말정말 많은데 이상하게 라멘을 파는 일식집이 없다. (적어도 나는 알지 못함…) 그래서 나에게는 ‘뮌헨=타쿠미’라는 공식이 머리속에 있는데 최근에 한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미나씨’가 있다 (내 글 읽는 거 의식한 거 한 1%?ㅋㅋㅋㅋㅋㅋㅋ) 갑작스레 집회를 가기로 결정한거라 당일 낮에 급 연락을 했는데 마침 시간이 된다고 하여 정말 급 만나서 급 수다 떨고 급 헤어졌다. 나는 원래 즉흥적인 약속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 미나씨는 어떨지 몰라 연락하면서도 조금 미안했는데 그래도 만나줘서 참 고마웠다는 것을 이렇게 공개적으로..다시 한번…ㅋㅋㅋㅋ♡
다시 아욱국 돌아와서 동료들과 함께 술 마시고 있는 남편 얼굴 보러 술집에 잠시 들렀다가 아예 눌러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같이 나눴다. 내가 뮌헨 집회를 갔다오기도 했고, 서울에서 100만명이 모였다는 것이 독일뉴스에도 많이 나와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서울인구 1000만명’, ‘1000만 관객 영화’ 등 천만이라는 숫자가 익숙한 나로서는 100만이 사실은 그렇게 큰 수로 와닿지 않았는데, 바이에른에서 나름 인구수 3위인 아욱국 시민수가 30만명이 안 된다^^; 아욱국 전체 시민의 3배 이상이 되는 인원이 한 곳에 모여서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쳤으면 꽤나 ‘쫄렸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순간 좀 소름돋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천하태평 잠이나 주무시거나 주사를…읍읍..) 친구가 얘기 들으면서 기사 검색을 같이 했는데 독일 기사 중에서도 경찰 추정 26만이라는 내용이 있었는지 그 대목을 크게 읽어주며 “역시 어느나라든 경찰이 집회인원 수 줄이는 건 마찬가지”라며ㅋㅋㅋㅋㅋ아니 근데 이건 좀 너무 심한거 아니냐며 ㅋㅋ그러게 말이다…
기자의 직업정신이긴 하겠지만 인구 수 다음으로 친구가 바로 물어봤던 것은 “다친 사람은 없었어?”였다. 앞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고 몇명 다치기는 했지만 굉장히 평화적이었다는 말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평화집회’라는 것이 가지는 임팩트가 이렇게 크다. 선진국 집회 보면 정말 폭력적이다. 다 때려부수고 연막탄 던지고 난리도 아니다. 사실 무력/평화집회 프레임이 너무 지겹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많은 사람들이 논의 중인 것 같다. 무조건 어느 한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주장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100만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서 정말로 평화롭게 집회를 끝마쳤다는 것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사실이고, 그래서 내가 봤을 때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매우 적절했던 것 같다. 이 시국에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어제는 정말 우리나라가 (=일반 국민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독일어로 구호를 외치는 했지만 대부분은 한국어여서 지나가는 독일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 아쉬웠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즉석에서 영어/독어 구호를 만들어줬다 : Park OUT! Park muss weg! …근데…내가 박씨다…..전날부터 남편이 Park muss raus 라면서 나를 놀려댔는데 ㅋㅋㅋㅋㅋㅋ이젠 다같이 나를 놀려…
내가 이 소리 들으려고 박씨로 태어났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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