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e Harlev | My own Country | 2005 |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한국에 대한 나의 양가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서 찍어왔던 작품. 사실 주로 왼쪽에 가깝기는 하지만, 막상 제3자가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발끈하게 되는 것을 보면… “까도 내가 깐다.” 라는 이상한 심리. 결국 한국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애정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까도까도 양파같은 그녀는 이미 몇년전부터 무수히 많은 분노를 유발했지만, 현실은 픽션을 능가한다더니 영화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네. 이걸 영화화해서 외국인들한테 보여준다면 “영화라고 너무 과한 설정을 부과한 거 아니야?”라고 느끼지 않을까. 나도 믿기지 않는데. 풀리지 않는 의혹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음모론들. 그런거 믿지 않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그 음모론들이 어떤 것보다 ‘논리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남편은 내가 분노할 때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너네 나라 정치 원래 후진적이잖아.’ 싶은 것이겠지. (내가 하도 욕을 많이 해서..) 그러나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독일만큼은 아니더라도,적어도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국가에서 온 친구와 얘기하다가 “너네는 왜 그런 일이 있는데 정부에 항의를 안 해?” 말했는데 그 친구의 태연한 답변: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시위하려면 아무도 못 보는 골목에서 혼자 해야 해.”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왜 이렇게 그동안 화가 그렇게 났는지 알겠더라.
우리나라 정치가 후진적이라고 그렇게 욕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아니면 적어도 미래에 나아질 것이라는 내 마음 속의 작은 희망이 있었던 건데… 그 믿음이 철저히 짓밟히고 산산조각 나고,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도둑질해 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후진적’이었던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가며 일궈놓은 소중한 것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리고 그냥 쓰레기통에 집어쳐놓은 나쁜 놈들. 그러니 당연히 빡치지, 그게 화가 안 나면 정상인가.
내가 가장 겁이 나는 것은, 이런 상황이 언젠가는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 물리적인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주시하고 기억하고 무뎌지지 않는 것 – ‘원래 그렇잖아.’라고 하지 않는 것, 내가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어찌 됐건 나의 조국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겹도록 들었겠지만 단기간에 이 정도의 경제성장을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우리나라만큼 편리하고 치안이 잘 보장된 나라는 드물다. 그러나 표면적인 편리함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복’과 관련된 요소들이 보장돼서, 그래서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어서, 그리고 그것이 국민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성취된 거라서,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울 수 있었으면, 그런 날이 언젠가는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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