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 독서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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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Sept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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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독서와 담을 지고 살던 사람이다. 지난 대학 전공이 ‘문학’이라서, 그리고 내 성실한 모범생 기질 때문에, 수업시간마다 읽으라고 하는 책만 열심히 다 읽었을 뿐이다. 지난 5년동안 읽어야 할 책 중에 유일하게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은 단 한권이었는데, (그 유명한 ‘마차 덜컹’씬까지만 읽고 도저히 지루해서 못 읽겠다고 생각하며 집어던진 에피 브리스트..) 그렇게 따지면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평균 2권씩은 읽은 셈이다. 그러나 수업 때문에 읽은 책들이다보니 대부분 독일 고전문학 번역본, 철학 관련 서적 또는 논문 뿐이었다. 내가 정말 자발적으로 책을 찾아 읽은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나름 재미도 있었고, 수업 시간에는 보다 심층적으로 주제에 대해 토의하거나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도움도 많이 됐는데 막상 자발적으로 독서를 하게 되지는 않았다. 어쩌다 책을 빌려보게 되면 하나같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아마 책을 보는 눈이 없어 그때 그때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를 집어들었다가 실망한 듯. 작년에 독일에 오면서 갖고 있던 책을 전부 지인들에게 기부하고 왔다. 책의 무게도 어마어마할 뿐더러 어차피 다시는 안 읽을 것 같아서…처음에는 당연히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책이 너무 읽고 싶어졌다. 문학을 전혀 읽을 일이 없는 ‘딱딱한’ 내 새로운 전공 덕에, 말그대로 내 마음이 무미건조해지는 느낌이었다. 반강제적이기는 했어도, 그렇게라도 읽었던 문학책이 내 삶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만들었구나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글’이 너무 그립다. 인터넷의 발달로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텍스트를 읽게 되지만, 내가 주로 보는 것은 블로그 글이나 기사들. 그러나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닌, 참신하고 맛깔난 묘사가 가득한 그런 글이 그리워진다. 독일어로 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외국어로 책을 읽는 것은 더 많은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왠지 ‘외국어 공부’의 수단이 되어 버려서 단어를 찾아보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내용 자체에 집중을 안 하게 되고 금세 흥미를 잃게 된다. 기껏 독서에 대한 동기유발이 됐는데 사라져버리는.
 
블로그의 영향도 있었다. 글을 쓰다보면 내 어휘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깨닫게 된다. 늘상 같은 단어의 반복, 내가 읽어도 크게 재미없는 내 텍스트들. 독서를 좋아하는 지인들 중에 놀라운 표현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글을 거의 안 써서 너무 아쉽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무조건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갑자기’ 많이 읽는다고 ‘갑자기’ 글 쓰는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지만, 독서와 글쓰기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블로그를 봐도 확실히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꾸준히 서평을 쓰는 블로거들의 글은 표현력이 더 좋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단순한 어휘력, 표현력이라기보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의 ‘관찰력’이다. 아주 단순한 하나의 사건, 찰나의 순간도 포착해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묘사할 수 있는 관찰 능력.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데, 그 무엇보다도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내 일상이 아깝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완전히 똑같은 것이 아닌데, 그 미묘한 차이를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여름 휴가 때 느낀 것은, 아무리 다른 장소에 있어도 더이상 내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행에서 대단히 새로운 것을 느끼거나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강박이지 싶으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 내 알맹이가 바뀌는 게 아니니 환경이 바뀌었다고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겠지. 더불어 내 생각이 내 언어에 갇혀버리는 느낌을 자주 받는데, 내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내 남편이다보니, 그리고 내가 독일어로는 말을 하는게 점점 귀찮아져서 거의 아무 말도 안 하거나 이상한 의성어만 내뱉다보니, 점점 말그대로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만 같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각 없는 사람인데, 그게 바로 나네. 블로그에 올린 글들이 별 내용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안간힘을 써서 무엇이라도 쥐어짜낸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지금 굉장히 혼란스럽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쓰다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무튼 결론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생각 많이 읽다보면 나도 조금 더 멀쩡한 인간이 되려나.
 
그런데 이미 한글로 된 책이란 책은 다 한국에 놓고 왔기 때문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전자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컴퓨터 화면으로 보기에는 눈이 너무 아파서 작년에 선물 받아 거실에 고이고이 모셔놓은 내 킨들을 활용해야겠다 생각했고, 열심히 삽질을 한 끝에 드디어 한글책을 킨들에 집어넣었다. 심지어 폰.트.도 설정하고!!!
 
그래서 원래는 그 과정을 이 포스팅에 넣으려고 했는데 역시나 서론이 길어지면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마구 적다보니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허허 바로 이래서 독서가 필요합니다.
 

결국은_쓸데없이_긴_포스팅_예고글이_되었다

 

실제 포스팅 > 킨들로 한글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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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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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Comments

결국 성공하셨군요! 킨들에 한국어 책 넣기! 저도 조만간 도전할 겁니다(..) 책 읽고 싶어요 진짜로. 근데 막상 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책을 안 읽을 것 같기도 하고 헤헤. 전 청개구리니까요. 그나마 최소한의 한국어 사용 + 오지랖으로 블로그를 하고 있는데, 요즘엔 점점 글쓰는 것에 욕심이 생겨요. 제가 우물 안에서 펄떡펄떡 온힘을 다해 물방울 튀겨가며 쓴 글이 결국 알고보면 허황된 겉껍데기만 있는, 말이 되지도 않는 이상한 글인데 말이죠(한숨) 글을 쓰다보면 단어나 표현의 한계가 아주 명확히 느껴져요. 단어는 종종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할만큼 단어 수준이 낮아지더라구요. 며칠 전인가 국어 어휘력 테스트를 하는데, 초등학생 수준으로 나와서 기겁할 뻔 했어요. 헤헤 제 글을 읽다보면, 이런 결과가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오늘은 글 쓰는데 유달리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구요. 엊그제부터 고민했는데 이제야… 이젠 뇌조차 생각을 정지해가는 느낌이예요. 히힣

미나씨도 킨들 있으세요? 그렇다면 제 다음 포스팅을 기대하세요 호호 인터넷에서 하라는대로 했는데 시행착오가 조금 있었거든요ㅠ_ㅠ 읽으면 저보다는 덜 고생하실지도..청개구리 완전 공감합니다. 저도 어제 집어넣고서는 읽지 않고 있네요ㅋㅋㅋ'고생했으니까 조금 쉬어야 해.' 이러면서..최근에 블로그 관련된 여러 가지- 글쓰기, 디자인, 코딩 등이 왜 이렇게 욕심이 나는지. 오늘은 갑자기 또 블로그 폰트 바꿔보겠다고 몇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기초가 없으니 전혀 모르겠네요. 방학 때 원래 공부하려고 했는데 저 지금 할 일을 미루고 있는거 맞죠?ㅋㅋㅋ 그래도 블로그를 하면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엄청 시간낭비인 것 같지만(ㅠㅠ) 자발적으로는 아무 일도 안 하는 성격인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꽤 긍정적인 변화거든요. 앞으로도 꾸준히 할 수만 있다면 블로그만큼 좋은 취미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ㅎㅎ
그리고 미나씨가 초등학생 수준이면..ㅠㅠㅠ저는 옹알이 수준인가요ㅋㅋㅋㅋㅋ거참 이상한 테스트네.

방학 계획은 원래 계획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고 본인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용! ㅋㅋ 우리 그냥 맘 편하게 놉시다. 우린 오늘 일은 내일로, 내일의 일도 내일로 미루어 두는 법을 알아야해요. 저도 블로그 하면서 돈도 안되고 시간만 엄청 드는 거 내가 왜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긴 한데, 나름의 취미 생활이기도 하고, 관심 종자인 저에게 적당량의 관심을 제공하기도 하는 데다가 그동안 써둔 글들이 소중해서 버리지를 못하네요… 헿헿 또 지금처럼 이렇게 하나하나 블로그 글이 쌓이면 나에게 내 블로그의 값어치는 어마어마 할 거예요 그쵸? ;)

'우린 오늘 일은 내일로, 내일의 일도 내일로 미루어 두는 법을 알아야해요.'오늘도 명언 하나 탄생했네요ㅋㅋㅋㅋㅋ미나씨 블로그는 정말 유용한게 많아서 객관적으로도 값어치가 어마어마할 거예요.사람들이 그걸 알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할텐데 말이에요. 우리 모두 약간의 관종끼를 갖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혼자 외롭게 놀고 있는 제 섬에 자주 찾아와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진짜 벽 보고 얘기하는 기분일듯ㅋㅋㅋㅋ 검색이 잘 안 될 줄 알았지, 아예 안 될 줄은 몰랐네요.허허

인턴들이 6시 넘어서까지 일하려 하면 제가 하던 말이 (윗분들 안들리게) "오늘 꼭 해야하는 일이에요?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은 내일로 미루라고 있는 거예요." 였거든요. ㅋㅋㅋ 일은 할 수록 생기는 터라. 으하하하.

해외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수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input 능력은 딱히 퇴화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데, 제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output으로 내어야 할 때 그 전에 쓰던 어휘가 혀끝에서만 감돌고 안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하려는 말이 생각이 안나는 건 사전으론 찾을 수 없고 말이지요. 글을 읽으면서 이런 어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쓸 수 있으니, 말씀하신대로 읽는게 중요한 건 분명하다 생각해요. 다만 그걸 쓰지 않으면 그렇게 스쳐지나갈 뿐이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어휘가 감퇴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네요. 흠흠.

맞아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서 많이 읽고 보고 쓰고 말할 수 있다 해도 해외는 해외이다 보니 한국어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확연히 적은 것 같아요ㅠ_ㅠ 공부를 해서 읽는 텍스트도 다 외국어고.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 거, 한국어 어휘가 감퇴하는 속도만큼 외국어 어휘가 늘면 좋을텐데 그것도 아니고. 이거야말로 '불공평'한 상황 아닌가요 허허 ;)그래도 그나마 블로그라도 붙들고 있으니 덜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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