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의 첫 근로계약서 작성
지난 달 처음으로 독일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한달 간의 단기 계약서였지만 제출해야 할 서류가 20장이 넘었다. 이력서, 출생증명서 (다행히도 결혼증명서로 대체 가능했다), 신분증, 보험가입확인서, 대학교 입학 확인서 등 기본적으로 필요한 서류는 물론이고, 극단적인 정당/단체, 특히 사이언톨로지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내용의 문서, 그리고 비밀 정보기관 등에 속해 있던 경력이 없다는 내용의 문서에 확인 서명을 해서 제출해야 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저 한달 계약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인데 뭐가 이렇게 복잡하나- 역시 독일스럽군’ 했는데 남편한테 너도 이런걸 다 해야 했냐고 물어보니 자기 기억에는 그냥 계약서에 사인만 한 것 같단다. (음…?) 그래서 역시 바이에른은 특히나 복잡하군 쯧쯧- 생각했는데 나중에 같이 일한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것은 바이에른 주의 문제도 아니고, 심지어 대학교의 문제도 아니고 오로지 학과의 문제라고. 같은 대학 다른 학과(들!)에서 일을 했던 학생 말로는 이렇게 복잡하게 온갖 서류를 요구한 건 처음이란다. 갑작스레 제안을 받은 일이라 시험이 끝나고 휴가를 떠나기 직전,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해결을 해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한데 준비해야 할 서류는 많다보니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일을 왜 한다고 했을까- 순간순간 후회했을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거 아닌 걸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지만..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이력서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이력’과 ‘특기’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해본 적이 없기에 ‘자소설’을 쓸 일은 장학금 지원할 때 뿐이었지만, 앞으로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확실한 이력서를 만들고 싶어졌다. 단순한 일을 과하게 ‘포장’한 ‘소설’이 아닌, 확실한 이력으로.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역시 세금에 관해서 철저한 나라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는데, 세금 면제 대상자인지, 보험 가입은 어떻게 할 것인지, 연금보험번호(…?Rentenversicherungsnummer), 교회 세금 유무 등의 사항을 체크해야 했는데 이런 저런 서류를 찾아보다가 일한 적도 없는 내게도 연금보험번호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현재 수입이 없어서 남편 보험에 속해 있는데 수입이 450유로가 넘으면 얄짤없이 따로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도…그동안은 행정처리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남편한테 도움을 받아가면서 쉽게 해결했는데 (“이런이런 서류 어떻게 했어?아 그렇게? 오키 땡큐”) 이번에는 남편도 모르는 사항이 너무 많아서 혼자 힘으로 검색해보고 알아봐야 했다. 다행히도 막상 자료 제출을 해야 할 때는 복잡한 사항 없이 모든 게 잘 해결됐다.
# 의미 있는 경험
지난 일주일 간 우리 대학교에서 독일 통계학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나는 일을 도와주는 (정확히 말하자면 ‘잡일’을 도와주는) 스태프로 일을 했다. 컨퍼런스 자체는 화-금요일까지였고, 그 전주에 3일, 그리고 월요일까지 4일동안 컨퍼런스 준비를 도와야했다.
맨 처음 했던 일은 A4 용지에 인쇄된 명함을 일일이 뜯어내서 명찰에 집어넣는 일.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참가자가 400명이 넘어서…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손으로 뜯을 수 있도록 이미 작은 구멍이 나있는 종이에 인쇄가 되어있었다는 것. 교수님이 가끔씩 오셔서 진행상황을 보셨는데 “예전에는 이걸 다 직접 오려내야 했죠. 허허허” 말씀하고 가셨다. 가위질이나 칼질을 해야 했다면 …하루종일 붙잡고 있었을지도.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를 해야 했는데 하다보니 헷갈릴 것 같아 저렇게 알파벳을 적은 종이를 사이사이에 끼워넣었는데 아이디어가 좋았다며 비서분한테 엄청 칭찬 받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헤헷.
이 방 바로 옆에는 부엌이 있었는데 냉장고/냉동고는 물론이고 온갖 식기류에 식기세척기, 커피 머신, 심지어 우유 거품 내는 기계까지ㅋㅋ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꺼내서 마실 수 있는 물, 주스 등도 박스 채로 비치되어 있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고 이름이 적힌 종이에 자기가 마신 양을 짝대기로 표시해두면 나중에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엄청 저렴한 가격이어서 수줍게 내 이름을 마지막에 기입하고 물을 꺼내 마셨다. 커피는 캡슐커피라서 캡슐을 사무실에서 받아가야 했는데 교수님이 우리보고 마시라며 본인 캡슐을 20개 정도 주고 가셨다. (천사같으신 분…♥) 아무튼 우리 집 부엌보다 좋은 부엌이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신세계!였는데.. 다음 학기에 같이 일하게 되면 학부생 신분이어도 키를 받아서 부엌 출입은 물론이고, 건물 전체 출입과 직원용 주차장(나에게는 무쓸모지만..)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고 해서 한번 더 놀랐다. 좋…좋다..
음료나 간단한 식기류를 제공하는 케이터링 업체가 있기는 했지만 그 외에 책상, 의자 등을 옮기거나 테이블을 꾸미는 일은 우리가 직접 해야 했다. 학생은 15명 정도가 있었고 그 중 여자는 나 포함해서 3명 뿐이었는데 다른 2명은 개인 사정으로 컨퍼런스 전날부터 참석할 수 있어서 전 주에는 나 혼자 (평균키가 180cm라는) 건장한 게르만 남성들 사이에 있었다. 하루는 강의실에 있는 책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재배치를 해야 했는데 강의실에 들어간지 10초만에 책상 3개가 이동이 끝났다. ‘여자라서’ 빼고 싶지는 않았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들을 수가 없는 무거운 책상이라 (그런데 다들 1인 1책상 하고 있고..;;) 멀뚱멀뚱 서 있다가 조용히 사무실로 올라가서 비서분과 여자 강사분과 함께 ‘섬세한’ 작업을 했다. 나는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한 것 뿐이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는 다른 학생들을 보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물 한 박스 나르는 것이라도 도와야겠다고 낑낑대며 들었는데 옆에서 보더니 “정말 할 수 있겠어?”라고 걱정해주기도 하고(ㅋㅋ) 남들보다 두배는 느리게 도착해서 내려놓으니 (남자)조교가 남자도 많은데 왜 그랬냐며 웃었다. 슬프지만 남녀의 선천적 차이를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반대로 여러 안내 종이를 책상이나 벽에 붙일 때 여자들끼리는 기울어졌는지 안 기울어졌는지 1cm도 신경쓰며 정성을 다 했는데 남자들은 아무렇게나 정말 삐뚫어지게 막 붙여놔서 나중에 여자들끼리 그걸 보고 엄청 웃었다. 남녀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다며.. 그런데 사실 다른 날은 남학생 한명과 같이 강의실에 있는 책상들을 둘이서 옮겨야 해서 전날 느꼈던 ‘노동’을 안 한 죄책감은 덜 수 있었다(…)
컨퍼런스 기간동안 맡았던 주요 업무는 리셉션에 앉아서 사람들이 오면 이름 물어보고 명찰, 가방, 기타 쿠폰 등이 담긴 편지봉투를 건네는 일. 원래 낯선 사람과는 독일어로 대화해야 하면 엄청 긴장하는 편이고 하던 독일어도 갑자기 엄청 못하게 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모든게 엄청 순조로웠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줄 알았는데 굉장히 드문드문 도착했고, 줄이 길어서 문까지 이어지는 일은 신기하게도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한가지 힘들었던 것은 이름을 제대로 찾는 일이었는데, 사람들이 본인의 이름을 말할 때 성만을 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성과 이름을 같이 언급하면 이름-성, 성-이름 순서가 두가지라 순간적으로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중’성. 그냥 들으면 이름-성을 말하는 느낌이라서 뒤에 있는 성을 찾다가 못 찾고…ㅠ_ㅠ 나중에는 반대로 이름-성을 말한 경우인데도 이중성으로 생각하고 잘못 찾은 경우도 많다. 가장 쉬운 경우는 성만을 말하고 뒤늦게 이름을 덧붙이는 경우. 앞으로 어디를 가든 나도 그렇게 이름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친절하게 ‘성은 ~고 이름은 ~입니다.’ 이렇게… 그리고 나중에 성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절대 이중성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ㅋㅋ
당연히 헷갈릴 수 있는 일이지만 아주 쉬운 성인 경우는 너무 민망해져서 죄송하다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는데 그때마다 다들 ‘뭐 그럴수도 있지’하는 반응을 보이고 여유롭게 기다려줘서 다행이었다. 소위 ‘진상’, ‘꼰대’, ‘갑질’ 따위는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친절하게 웃어주고 소위 Small talk로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분들이 그랬는데, 나도 저렇게 교양 있고 품위있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중에 떠나면서 모든 게 체계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었고, 특히 스태프가 친절했다면서 고맙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컨퍼런스가 다 끝나고 다같이 모였을 때도 교수님께서 여러 손님들이 자기한테 와서 스태프 칭찬을 많이 했다며, 어떤 기준으로 뽑은거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너무 뿌듯했고, 사실 내가 봐도 같이 일한 사람들 전부 너무너무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바쁠 때는 굉장히 바빴지만 중간중간에 일 없이 쉬고 있어야 할 때도 워낙 많아서 서로 대화할 시간도 많았는데 하나같이 친절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많은 한주였다.
뒤쪽에 비치해두고 손님 없을 때마다 조금씩 먹었던 우리의 간식거리. 원래 버터 프레츨 진짜 좋아하는데 매일 먹었더니 당분간은 보기도 싫다..ㅋㅋㅋㅋ
마치 이제 정말 여름이 끝났다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알리고 싶었던 것 마냥, 날씨가 마지막 남은 ‘좋은 날씨’를 쥐어짜내기라도 하듯 이번주 내내 정말이지 더.웠.다. 하루종일 건물 안에 있으니 너무 갑갑하고 더워서 잠시 건물 앞에 있는 분수(?) 곁에 앉아서 쉬다가 조교가 갑자기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갔다. 축축해지면 신발 다시 어떻게 신냐고 우물쭈물 서 있었더니 그럼 풀밭에 마를 때까지 서있으면 된다는 말에 설득 당해서 발을 담갔는데 정말 차갑고 시원해서 완전 힐링이 되었다. 그래서 괜히 사진도 찍어보았다 ㅋㅋㅋㅋ
둘째날은 시청 Goldener Saal에서 환영식이 있었다. 스태프도 초대권을 받아서 갔는데 이 도시 살면서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처음인데다가 나중에 밑에서 저녁까지 먹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저녁때 해가 질 때쯤부터 있었는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색 장식들을 보니 내 마음까지 금색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원래 몇달간 리모델링으로 인해 앞에 천막을 쳐놨었는데 얼마전에 완성돼서 다행이었다.
재즈 음악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밑에서 밥 먹을 때도 몇시간 내내 음악을 연주했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천장. 핸드폰으로 찍어서 화질이 안 좋은 게 조금 아쉽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너무 격식이 없는 것 같아 망설였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손님들도 스마트폰 들고 열심히 찍길래 나도 당당하게 꺼내서 찍었다.ㅋㅋㅋ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 너무 평화롭고 고요했다.
#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상
…이라고 하면 조금 (많이) 거창하지만, 이 일을 제안 받은 것 자체가 내게 굉장히 의미 있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경영/경제학과가 인원이 많다보니 학과 내의 세부 심화전공이 다양하고 그에 따라 Lehrstuhl(도대체 한국어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도 다양하다. 이번에 내가 소속돼서 일하게 된 것은 경영학과 내의 통계학 관련된 Lehrstuhl이었는데, 이번 학기 때 수강한 통계학1 시험을 잘 봐서 ‘스카웃’이 된 것이었다.
거의 모든 Vorlesung (대형강의)은 Übung (조교들이 보통 연습문제를 풀어주면서 내용을 보충/보강하는 수업)이 있는데, 위붕의 경우는 석사나 박사생들뿐만 아니라 학부생도 조교를 맡아서 수업을 진행한다. 작년에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학기 중에 용돈벌이로 식당 서빙 등도 좋지만 이왕이면 이력서에 기입할 수 있는 수업 조교 등의 활동이 여러모로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자격이 있어야 수업 조교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이라서’ 언어적 장벽이 있는 내게 과연 그런 일이 주어지기나 할지 알 수 없었다. 수업 조교를 찾는다는 공지도 종종 눈에 띄었지만 막상 지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통계학 시험을 보고 3일 후쯤 갑자기 메일이 온 것이다. 내 시험지가 ‘긍정적으로’ 눈에 띄었다며 시간이 되면 한번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사실 시험을 볼 당시에 시험을 잘 봤다는 느낌이 바로 들기는 했는데 700개가 넘는 시험지 사이에서 내 시험지가 눈에 띌 정도로 내가 잘 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60점 만점에 60점을 받았다.) 그리고 학생의 성적이 조회가 가능한지 내가 그동안 다른 과목에서 받았던 학점을 조회했는데, 지난 2학기동안 관리를 열심히 한 덕에 학점이 꽤 높았고 특히나 수학 관련 과목은 전부 에이쁠에 해당하는 점수라서 교수님은 내가 이전에 수학 관련 전공을 했을거라고 ‘착각’하신 것이다. 교수님을 만나서 독문학 전공을 했다고 했을 때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실망감..(그 순간 정말 ‘문송합니다…..’ㅠㅠㅠ라는 생각이 들었다..)을 보고 나는 왜 이과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지만 ㅋㅋㅋ 어쨌거나 이렇게 기분 좋은 오해를 받으니 그동안 했던 여러 고민과 좌절들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우선 이번 학기는 내가 통계학2 수업도 들어야 하고, 어차피 조교나 튜터 배정이 끝나서 일반적으로 학부생에게 주어지는 일을 할 수가 없는데, 분명 다른 일거리도 있을 수 있다며 불확실한 약속을 받았고, 다음 학기에는 수업조교나 튜터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컨퍼런스 스탭으로 함께 하면서 이 Lehrstuhl을 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를 받게 된 것이었다. 학생 대부분은 석사 과정이었고 내가 학년 상으로는 가장 어렸는데 덕분에 앞으로의 학과 커리큘럼이나 다른 학부과정 (주로 ‘경제’를 포함하는 다른 융합학과들)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지만, 충실하게 내 할 일만 묵묵히 해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 의심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하 고 있 다!
Blog Comments
Lividk
September 18, 2016 at 11:54 am
훈훈한 글이네요. :) 지금 계시는 곳에서 열심히 하고 계시니 앞으로 원하시는 곳이든 예상하지 못한 곳이든 길이 차근차근 열릴거예요. 화이팅입니다! ;)
Sue
September 19, 2016 at 10:42 am
따뜻한 응원 댓글 감사합니다 :) Lividk님도 항상 화이팅입니다♡
하는
October 7, 2018 at 4:35 pm
오 잘 읽었습니다! 저는 독문학으로 입학해서 통계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데 왠지 반갑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