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약 1주일간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다녀왔다. 그 비싼 북유럽을 간 이유는 간단했다 : 남편이 간절히 원해서 ㅋㅋㅋ난 물가가 저렴하다는 동유럽을 가고 싶었는데 (우리 돈 없잖아 엉엉 ㅠㅠ) 남편이 계속 북유럽을 가고 싶어했다. 비싼 숙소와 이동수단 예약을 끝마치고 대체 이 비싼 데를 왜 가고 싶냐고 물으니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단다. (네?! 이중인격자세요?)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은 유럽의 대도시를 전부 섭렵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교환학생 때 유럽의 대도시 여행은 많이 다녔는데 정작 독일인인 남편은 독일을 벗어난 적이 별로 없다. 원래 외국인들이 여행을 더 많이 다니는 법이지. 나도 한국에서는 서울을 제외하고 가본 다른 도시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경기도에 있는 도시들 위치도 하나도 모르는 전형적인 서울촌ㄴ…) 아시아 국가도 베트남 딱 하나 가봤으니 할말 다했지. 원래 남편이 로마로마 노래를 불렀는데 테러 위험 때문에 내키지도 않고 나는 예전에 가본 적이 있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벌써 9년 전 일이기는 했지만… 더운 여름날 이탈리아로 내려갔다가는 인간구이가 될 것 같아 싫었던 것도 있었고. 그렇게 해서 나름 타협했던 것이 북유럽이었는데 (그런데 북유럽은 너무 추웠..) 생각해보니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나 싶다.
당장은 자녀계획이 없지만 그래도 한 5년 내에는 애를 가지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여행은 날씨 좋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겨울에는 웬만해서는 해외여행을 피하려고 하니까 실제로 우리에게 남은 둘만의 해외여행은 많아봤자 5번 정도인데, 그 5번 이내에 대도시들을 다 돌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둘에게 무의식 중에 있는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은 (어린) 자녀와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정적인 문제도 크고.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면 자연에서, 그곳도 대부분 한 곳에서 시간을 보낼텐데 (내 기준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렇게 휴가를 보내면 정말 생각만 해도 너무 지루할 것 같다. 특히 미술관은 어떻게 다녀야 하는거지. 그래서 동시에 같이 드는 뻘생각은 우리 아이가 미술에 재능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ㅋㅋㅋ 그러면 어릴 때부터 관심있게 보지 않을까. (네..말 그대로 뻘생각입니다..) 아이가 다 자라서 독립할 때까지 기다리면 내 나이가 몇인데…그래서 아이를 가지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은 다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인형 같이 생긴 아가들을 보고 나니 막 아기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함정.(물론 우리 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지겠지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남편과 나의 여행 스타일이 참 잘 맞는다는 것. 우리 둘다 전형적인 ‘관광객 모드’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나 너무 빡세지는 않게) 무엇보다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조각보다는 회화를 좋아하고. 그러나 박물관은 별로 관심이 없다. 유명한 곳은 들어가지만 (그것이 관광객 마인드니까!) 그냥 휙- 둘러보고 끝날 때가 많다. 교회는 거의 다 들어가지만 빨리 둘러보고, 성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쇼핑은 물론이고 벼룩시장, 시장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현지인 라이프’를 즐기고자 공원이나 강가에 앉는 것은 무료해서 견디지 못하고 (다리가 아파서 쉬어야 하는 게 아닌 이상 사진만 찍고 장소를 옮긴다) 해변에도 큰 관심이 없고. 이렇다보니 우리의 관심사는 대부분 대도시가 아니면 충족되기가 조금 힘들다. 우리 둘이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음식’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는 맛집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음식값은 조금 아끼고 싶어했다. 예전에 런던 같이 갔다가 매끼 테스코 샌드위치를 먹는 악몽을 경험한 이후 남편한테 맛있는 거 안 사먹으면 절대 그 여행 안 한다고 음식값은 아끼는 게 아니라고 세뇌시킨 이후는 아무 문제없이 맛있는 거 많이 사먹으면서 여행한다. 물론 맛집이라고 해봤자 적절한 예산 내에서 괜찮다고 평가받은 곳들이다. 나에게는 독일 음식이 워낙 맛없다 보니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이때다! 맛있는 것을 원없이 먹을 때다!’ 하는 생각이 있다. 그렇게 원없이 먹다보면 다행히도 독일 돌아와서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조금 사그라든다.
여행 같이 갔다가 친구가 원수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늘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선호했는데 평생 같이 여행 다녀야 할 사람이 이렇게 잘 맞으니 다행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문제인데 우리는 평소의 생활 방식도 그렇고 꽤나 잘 맞는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인 “결혼하기 전에 꼭 여행을 같이 가봐야 한다.”가 예전에는 여행을 했을 때 그 사람의 ‘바닥’을 볼 수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에서는 예상 못한 변수들이 많이 발생하니까) 나는 그것뿐만 아니라 둘이 잘 맞는지,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면 ‘큰 희생’ 없이 서로 맞춰갈 수 있는지(누군가가 계속해서 ‘큰 희생’을 해야 된다면 서로가 너무 불행할 것 같다)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연애중에도, 결혼생활 중에도 싸운 적 없이 잘 지낸 이유가 근본적으로 서로 잘 맞아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여행 얘기를 적어놓으니 한달도 안 됐는데 다시 여행 가고 싶네.
Blog Comments
Mina
September 11, 2016 at 9:10 am
크 우리랑 짱짱 비슷한 커플!! 다만 다른 점은, 저는 미술관 좋고 박물관 싫은 것도 맞지만 제 남친은 박물관 미술관 둘 다 싫어한다는거(..) 그래도 전 미술관을 안가면 난 죽을 것 같다! 뭐 이런 건 아니라서, 대신 제 취향으로 교회나 성당 구경을 미술관 대신 넣어요 ㅋㅋㅋ 근데 수수님네는 진짜 근본적으로 두 분이 잘 맞는 커플인 것 같아서 부럽부럽.
Sue
September 11, 2016 at 12:01 pm
둘다 싫어한다니ㅠㅠㅠ슬프네요..제 남편이 그랬다면 저는 아마 다른 데에서 놀고 있으라고 보내고 혼자 미술관 다닐 것 같아요ㅋㅋㅋ 저도 사실 미술관을 안 가도 큰 문제는 없는데 확실히 한번 가고 나면 다시 여행하는 게 신이 나서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가줘야 하거든요. 남편은 원래 그렇게까지 미술관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여행 다니다보니 '유명한 데에는 가본다'라고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역시 세뇌의 중요성인가..^^;
Lividk
September 11, 2016 at 4:52 pm
저희는 카페 투어 좋아하고, 남편은 꼭 저글링을 할 수 있는 공원 등을 찾아다니곤 하죠. :) 관광객 모드는 좋아하는데 낮에 꼭 한번 호텔로 돌아와서 낮잠 좀 자야 하고요. 둘이 여행 스타일이 비슷한건 참 좋은 거 같아요. :) 오신 기간 코펜하겐이 참 추웠다고 하는데, 안좋은 시기에 다녀가셔서 안타까워요. ㅠㅠ
Sue
September 12, 2016 at 12:49 pm
저도 원래 카페를 좋아하는데 여행 다니면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안 들어가게 되더라구요. 물론 지쳐서 앉을 곳이 필요하거나 엄청 유명한 곳이면 들어가구요ㅋㅋ와 근데 저글링!!이라니..제가 생각하는 공을 양손으로 주고받는 그 저글링 맞는..거죠?*.* 신기해서 저 심지어 검색도 해봤어요..다른 뜻도 있는건지ㅋㅋㅋㅋ그리고 코펜하겐은 그래도 날씨 괜찮았어요. 오히려 너무 더웠으면 돌아다니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희 부부 둘다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좋은 기억이 남아있답니다ㅎㅎ
lividk
September 18, 2016 at 12:15 pm
그 저글링 맞아요. ㅎㅎㅎ 공, 클럽, 링 등 다양한 것으로 저글링을 한답니다. 여행다닐 땐 공만 들고 다니지만요. 집에 외발 자전거도 있어서 그거 타고 하기도 해요. ㅎㅎㅎ 특이한 취미가 많은 남편이에요. ;)
Sue
September 19, 2016 at 10:03 am
우와 정말 특이하네요!! 저글링이나 외발 자전거는 한국은 물론이고 독일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데..ㅎㅎ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같이 서커스 갈 필요도 없이 아빠가 다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