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마음

결혼기념일에 대한 포스팅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적어본다.

항상 그런건 아닌데 누가 나에게 어떤 계기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기로 다짐했냐고 물으면 갑자기 말을 하다가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그건 내가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거나 말 못할 가정사가 있어서가 절대 아닌데 그냥 가끔씩 그렇게 눈물이 난다. 사실 나는 인생의 큰 굴곡 없이 평탄하게 살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돈 많은 금수저로 태어나서 희희낙락하며 살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세상에는 내가 경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고, 그건 내가 경험한 어려움과 고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서 내 고통이 사라지는가? 아프리카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지금의 내 고통이 완화되는가? 게다가 내가 고통을 받던 그 시절에는 이러한 관점이 나에게 없었다. 애초에 나는 사고방식이 상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남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강박도 없지만 그렇다고 남보다 나으니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내면의 평화가 깨져버린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 사건들이 모여서 정말 오랫동안,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매일 혼자 방에서 펑펑 울었고, 과연 나는 행복해질 수는 있을까. 삶의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까. (심지어 적극적인 자살 충동이 아니라 그냥 무기력에서 나오는 생각이었다. ) 온갖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있었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어른들도 있었고. 종교활동도 열심히 했고, 일기도 매일 썼고,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고,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외롭고 힘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하기는 힘들다. 객관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지만, 사실 나를 사로잡았던 ‘외로움’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실체가 있기는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공부였나? 불안이었나?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외로움이었나? 죄책감이었나? 지금은 그 감정이 어떤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처럼 떠오르는데, 심지어 이걸 쓰는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언젠가는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울지 않을 수 있을지,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극복해야 할 과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나를 형성하고 있는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때는 그것이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내 유일한 본모습이라고 여겼다. 어딘지 모르게 결핍되어 있고 괴롭고 우울한 모습.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내가 굳이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남편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다. 내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버리도록 만들었고, 남편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밝은 면을 보게 되었다.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깊은 얘기를 나눠서 치유됐다거나 남편이 나에게 엄청난 조언을 해준 것도 아니다. 사실 남편이야말로 내가 느낀 감정들을 가장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그냥 내가 남편을 만난 이후로 자연스레 변하게 됐다. 남편은 자존감이 굉장히 높고, 그러다보니 남에게 상처주는 말도 전혀 안 한다. 본인의 자존감이 높으면 굳이 남을 깎아내릴 필요가 없고,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게 대할 수 있으니까. 나는 고집이 세고 가끔씩 분노(개인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사회를 향한 분노가 일년 전에 최고조였다)가 폭발할 때가 있는데 남편은 본인 멘탈이 워낙 튼튼하니 굳이 노력 없이도 그런 나를 그냥 품어줄 수 있다. 물론 공감은 하기 힘들테니 거기서 오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솔직히 외국에서 사는 것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언젠가는 문화차이로 오는 외로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도 늘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훨씬 외로웠다. 지금은 나를 잠식해오던 우울함과 불안함과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왜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지’ 싶을 정도로 평온한 상태인데, 내 인생에서 아주 어릴적을 제외하고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내면의 평화를 바로 남편이 주었다. 남편은 정말 단 한번도, 나를 불안하게 만든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될만한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남편이 대단한 성인군자인가? 당연히 남편도 단점이 있고,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는 남편이 그렇다. 누구는 콩깍지라고 하겠지.  심지어 남편은 내가 본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면 “내가 뭘 했는데?”라고 오히려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혼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게 핵심이 아닐까. 나한테 그런 사람이라는 것. 나의 부족함을 ‘자연스레’ 채워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자연스레’ 변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 처음에는 걱정이 됐다. 결국 외부에서 주어진 것으로 인해 내가 행복하다면, 그건 다시 뺏길 수도 있는 것인데. 하지만 나도 변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내 내면도 변하고 있으니까.  매일매일 남편이 너무 좋고 사랑스럽고 같이 살아서 행복하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한 이불 덮는 원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전에는, 그리고 지금은,  내 곁에 있는 내 남편이 너무 고맙다. 그래서 그렇게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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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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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Comments

포스트 읽으면서 넘나 부러워서 벙-쪄있었어요. 근데 진짜 남편 분 볼 때마다 혹은 남편 분 이야기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결혼 정말 잘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내가 오롯이 내가 될 수 있게 하는, 그러면서도 내 좋은 모습은 더 좋게 해주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냔 말이죠! 크 부러우면 지는 건데, 이번엔 기꺼이 지겠습니다 //_//

수수님 정말 너무너무 부러워요! 글만 읽어도 행복 ㅎ.ㅎ

보고싶구나 흑흑

멋있어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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