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출산] 코로나 시기에 독일병원에서 출산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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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전에 독일에서 출산한 한국인 산모들의 출산 후기가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혹시 이 시국에 출산을 앞둔 다른 산모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남기는 글.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남기는 글. 출산 과정 자체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으나 그 전과 출산 후 입원했던 기간에 대해서는 약간 트라우마(?)가 남아서 3주가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서럽고 울적한데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면서 그때의 감정을 털어내고 내 마음도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일은 보통 진료받는 산부인과와 출산병원이 따로 있다. 한국은 개인병원에서도 출산을 하지만 독일은 대학병원 등 큰 규모의 병원에서만 출산을 하는데 내가 갔던 병원의 경우는 일반적인 태동검사나 검진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산예정일을 넘기게 될 경우 매일 또는 이틀마다 검사를 해야 하는데 주말이나 공휴일의 경우는 일반 산부인과가 닫으므로 예외적으로 출산병원에서 기본적인 검사를 해준다. 내가 출산했던 날은 하필 공휴일이라 동네 만삭 산모들이 다 와 있었고 병원 의료진은 평소보다 적었다. 내가 했던 안 좋은 경험들은 사실 이런 사정이 맞물려 있어서…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서 여러 제약들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절대 독일에서 출산하면 안되겠다! 겁먹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한국 출산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만 다시 돌아가서 선택을 한다고 해도 나는 독일에서 출산을 할 것 같다. 다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미리 알아서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평소에는 최악을 가정하고 걱정하는데 이상하게 출산이나 그 후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안 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출산의 징조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출산 며칠 전에 이슬이 비치기도 하고, 출산 일주일 전부터 밤마다 가진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양수가 먼저 터지기도 한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아주 가끔씩 날카로운 걸로 밑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은 있었으나 그 외에는 전혀. 이미 임신 37주차에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을 때부터 아기는 골반 아래에 잘 내려와 있어서 양수가 먼저 터져도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고 천천히 준비해서 병원을 가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렇게 조급하지는 않았다.

독일에서는 예정일이 지나면 이틀에 한번씩 태동검사를 하고 일주일 이상이 지나면 매일 태동검사를 하는데 그때 수치를 봐서 유도분만을 결정한다. 그동안 했던 검사들에서는 항상 양수량이 충분하고 태동도 좋다고 해서 의사가 기다리자고 했고, 최대 2주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예정일이 지났어도 ‘아이가 뱃속이 좋은가보다’ 하고 느긋하게 생각했었는데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이러다가 유도분만 하고 (그것까지는 상관없는데) 나중에 진통이란 진통은 다 겪고 나서 제왕까지 하는게 아닐까 걱정이 돼서 이왕이면 유도분만 없이 애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조급해졌다. 그래서 뒤늦게 순산에 좋은 운동 찾아서 하고, Himberblättertee (산딸기잎차) 마시고 대추 먹고. 그래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예정일 +3일

남편과 동네산책하면서 사진도 찍고

요즘 인기 폭발인 도넛 Royal Donuts와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저녁으로는 피자를 시켜먹었다.

그리고

22:00

말로만 듣던 이슬이 비쳤다. 색깔은 분홍색이었는데 너무 색이 예뻐서 놀랐다 ㅋㅋㅋㅋ 쓰면서도 어이없는데 보면서 ‘피가 이렇게 예쁜 색을 띌 수 있다니!’ 하고 감탄했다ㅋㅋㅋ 그런데 그동안 후기로 읽고 들었던 끈적이는 분비물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예 액체처럼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 간혹 양수가 새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 걸 읽어서 이게 양수인가 싶었는데 생리대가 전혀 젖지도 않고. 암튼 소량의 피를 보았고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드디어 출산이 다가왔구나 하고 같이 기뻐했다. 그런데 이슬이 비쳐도 그게 당장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며칠 이내로 애를 낳겠구나 싶었던거지, 내가 다음 날 우리 아기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ㅎㅎㅎ

23:00

생리통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생리통이 허리통증으로 오는 편인데 이때도 마찬가지. 배도 답답했는데 저녁 때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 그런건지 이게 가진통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진통은 주기가 있는데 이건 그냥 계속 답답한 느낌이어서 가진통은 아니구나 싶었다.

예정일 +4일 (출산 당일)

00:00

주기적인 진통이 느껴졌다. 진통 앱으로 열심히 기록했는데 한번 진통이 오면 90초 정도 지속됐고 진통주기는 들쭉날쭉했다. 길면 20분, 짧으면 5분 정도. 한시간 이상 5분 이내의 진통이 반복되면 병원에 가라고 하던데 7분 간격까지는 줄었다가 다시 서서히 늘었다. 출산준비교실에서 배운 호흡법으로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3초 숨을 참았다가 입으로 다시 내쉬고 3초 숨을 참았다가 다시 코로 숨을 들이쉬고..반복) 어느 정도 참을 수는 있었으나 잠을 자기는 글렀다..

05:00

침대가 너무 폭신해서 영 불편했다. 게다가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이 신경쓰여서 (정작 남편은 안 깨고 잘 잤는데ㅎㅎ) 거실 소파로 장소를 옮겼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주기가 점점 늘어서 15분 정도까지 되었다. 약간의 쪽잠을 잘 수 있었다. 7시까지 진통이 심해지면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아침이 되니 오히려 조금 나아졌다. 어차피 10시에 태동검사가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냥 원래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이때만 해도 ‘이게 밤에만 오는 가진통인가? 이걸 며칠동안 겪은 산모들은 어떻게 버티지? 나도 앞으로 며칠간 이렇게 고생하려나?’라고 생각했다.

09:30

아침 먹고 샤워하고 택시로 출산병원으로 이동.

그냥 검진을 하러 간 것이었지만 가진통을 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혹시 몰라서 분만실에서 쓸 출산백팩도 들고 갔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출산가방을 쌀 때 분만실에 들고 갈 가방, 입원해서 쓸 가방 두개를 들고 가라고 조언한다. 분만실에서 무거운 가방 끌고 다니는게 불편하니까.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남편은 분만실(Kreißsaal)에서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된 후에만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서 병원에 가서는 내가 혼자 출산백팩 메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했다. 문제는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다 싸는 바람에 그 백팩 무게가 거의 5kg가 되었다는 점….그걸 진통하는 와중에 혼자 끌고 다녔다는 점..ㅠ_ㅠ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이 머무는 건 안 되어도 가방을 주기 위해서 잠깐 출입하는 건 가능했다. 혹시 이 시국에 독일에서 출산을 앞둔 산모가 있다면 이런 사소한 것이라도 병원에 미리 물어봐서 나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병원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인적사항 확인하고 6층 분만실로 가라고 했다.

10:30

생각없이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왠지 불안해서 지나가는 의료진 붙들고 혹시 내가 왔다는 게 잘 등록되어 있는지 물어보니 그게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라 초인종을 눌러서 (분만실 입구에 초인종이 있었다) 얘기를 해야 하는 거라고.. 0층으로 다시 내려가서 거기서 태동검사를 받아오라고 얘기해줬다. 아……..이건 미리 물어보지 않은 내 잘못이지만 왜 0층에서 등록할 때 그런 얘기를 안 해주고 그냥 올라가라고만 한 건지 왠지 억울했다.

독일에서 30분, 1시간 기다리는 게 뭐 대수인가 싶을 수 있는데 대기실 의자가 다 이랬다.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분만실 앞, 산모들이 대기해서 기다리는 의자인데 이렇게 불편한 의자를 놓는다고? 같이 기다리던 산모들도 너무 말이 안 된다고 같이 투덜댔다. (나중에 헤바메에게 말을 했더니 이게 위생상 어쩔 수 없을 것 같지만 병원에 건의해보겠다고ㅎㅎ 과연..) 참고로 나는 계속해서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ㅠㅠ.. 엎드려서 호흡하고 너무너무 눕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ffp2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이건 뭐 최악의 상황. 출산병원 등록할 때 대기실 의자를 확인할 수 있으면 꼭 확인해보자. 그리고 저렇게 불편한 의자인 경우 꼭 방석이나 수건 등을 미리 챙기자 ㅠㅠ

무거운 가방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고. 나는 주저앉아서 진통을 계속 겪고.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와서 0층으로 갔는데….. 와 드디어 도착했다! 했는데…문이 열리기 직전에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6층으로 다시 올라가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한 상태로 서 있는데 6층에 의사와 침대에 누워있는 산모가 있었다. 의사는 우리가 지금 내려가야 하니까 나오라고 했다. 알고보니 엘리베이터에 열쇠를 넣어서 돌릴 수가 있는데 그걸 사용하면 그냥 무조건 엘리베이터가 그 층으로 올라오는 원리. 몇초 차이로 나는 아래에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버린 것. 그래도 의사가 다시 바로 올려보내줄게~라고 친절하게 한마디 하긴 했지만 6층에서 기다리면서 눈물샘 폭발했다. 그 와중에 진통 와서 또 주저앉고..진짜 서러움이 폭발했다..엉엉 울다가 ‘너는 이제 엄마가 될거야. 겨우 이런 걸로 울면 어떡해. 정신줄 잡아! 정신차려!’ 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힘을 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로도 나는 계속 기다리고 기다려야 했다..

11:00

소변검사와 태동검사. 사람은 많았는데 기계가 여러개라 생각보다는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태동검사 받는 와중에도 계속 진통. 그래도 대기실 의자보다는 편안해서 다행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게 호흡하고 있는데 간호사는 수치를 보더니 진통세기가 전혀 강하지 않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 절망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도 간호사가 분만실에 전화를 해줘서 이 산모가 진통을 강하게 느끼고 있으니 한번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6층행.

12:30

다시 불편한 의자에서 1시간 가량을 기다리다가 헤바메가 내진을 했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질 초음파와 내진 통틀어 가장 아무 느낌 없던 내진이어서 헤마메가 대단해보였다ㅋㅋㅋ 게다가 병원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쌀쌀맞고 무뚝뚝한 말투였는데 (그냥 딱 봐도 스트레스 폭발상태..편견일 수 있지만 입원 후에도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참… 대부분… 휴…) 이 헤바메는 말투 자체가 다정하고 친절해서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2cm 밖에 안 열렸다는 안타까운 소식. 그래도 이미 아기가 많이 내려와 있고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고 자궁(?)이 탱탱해서(?) 오늘 내로 애가 나올 것 같다고 우선 입원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 가방을 보더니 진통하면서 이런 무거운 거 끌고 다니는 거 아니라고, 이건 코로나여도 남편이 잠깐 갖다줘도 되는 거였다고 얘기해줬고, 가방 맡아줄 테니 0층으로 내려가서 입원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입원을 하게 되면 방문객을 받는 게 가능하므로 분만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남편이 원래 면회시간(오후 2시부터 7시반)에 맞춰 병원 출입이 가능해진다고. 이렇게 해서 나는 또 다시 0층으로…ㅋㅋㅋㅋ그래도 이제 입원해서 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만 기다리면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남편은 계속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나가서 남편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남편을 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13:00

드디어 입원 수속을 밟았다. 싸인 하는 와중에 진통을 하고. 정말 아픈 와중에 이런 걸 다 해야하나 싶었다. 독일은 공보험의 경우 2인실 또는 3인실에 무료로 입원이 가능하고 1인실이나 가족실(침대가 두개인데 하나는 보호자용. 그래서 남편도 같이 입원해서 밥도 받고 이런 ㅎㅎ)은 추가로 돈을 내면 가능한데 코로나로 인해서 가족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1인실의 경우도 빈 병실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다행히도 1인실이 있었다! 가격은 1박에 125유로.. 보통 70유로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많이 비싼 편이었다.

이제 드디어 누울 수 있겠구나! 하고 기뻐했는데 그럴리가..입원 수속을 밟고 서류 들고 6층으로 다시 올라오라고 했는데 또 30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중간에 코로나 검사도 했는데 pcr 테스트와 신속한 것 두개 다 했는데 정말 하나도 안 아프게 해서 의외였다. 한국은 꽤나 깊숙히 찌른다던데.

13:30

2층에 있는 가족병동으로 가면 간호사들이 어느 방인지 안내해 줄거라고 해서 내려갔는데 간호사들이 교대시간이라 방 안에서 얘기를 하는 중이었고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10분 정도 기다린 것 같은데 드디어 입원한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에 들떠있는 상태였기에 그 시간이 전보다 더 절망적이었던 것 같다ㅎㅎ 그래도 중간에 간호사분이 나와서 방으로 안내해줬다.

이걸 며칠간 꼽고 있어야 했다. 하필 손목 접히는 곳이라 아플 뿐더러 나중에 아이 안을 때도 계속 불편해서 빼달라고 부탁했는데 검사할 때 필요하다고 출산후에도 안 빼줬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필요가 없었다..흑

14:00

남편이 입원 때 필요한 출산가방과 이것저것 챙겨서 왔다. 남편이 오니까 정말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게 어떤건지 체감할 수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짐. 망할 코로나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게 크게 와닿았다. 남편이 있었다면 내가 왔다갔다 할 필요도 없었거나 같이 이동하니까 심적으로 덜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본격적인 출산 전에 남편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인 상황이었다.

15:30

크게 아프지 않으면 이 시간에 다시 분만실에 검사 받으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의사가 지금 사람 많아서 좀 기다려야 한다며 나에게 짜증을 냈다. 아니 기다려야 하는 건 난데 왜 당신이 짜증을 내세요.. 그래도 15분 정도 밖에 안 기다렸다. 태동검사를 하고 전에도 내진을 했던 천사같은 헤바메가 와서 내진을 했는데 아직도 겨우 2.5cm 열렸다고.. 3시간동안 겨우 0.5cm라니 절망적이었다. 게다가 이때는 진통의 세기가 이전보다 훨씬 강했다. 몸도 힘들었지만 정신 상태가 너덜너덜해져서 그냥 제왕절개를 하고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기존에 했던 호흡법은 도움이 안 돼서 헤바메한테 호흡법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몇초 쉰 다음에 “아~” (약간 한숨쉬는 듯이?) 소리내면서 몸에 힘 다 풀고 (특히 어깨 긴장 다 풀고) 숨을 내쉬라고. 이 방법으로는 호흡을 내쉴때 힘을 다 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16:30

헤바메는 산책을 하거나 욕조에 물 받아놓고 쉬는 것 중에서 고르라고 해서 욕조를 선택했다. 이미 오랫동안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도저히 걸을 기분도, 상태도 아니었다.

아직 본격적인 출산 전이라 남편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욕을 할 경우 어차피 보호자가 있어야 해서 분만실에 올라와도 됐다. 단지 산책이 싫어서 선택한 거였는데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있고 싶은 만큼 있으라고 해서 한시간 반 가량을 들어가 있었는데 진통도 몇번 안 했고 이전보다 훨씬 참을만 했다.

18:00

이 방에서 태동검사와 내진을 했다. 많이 진행이 됐으면 남편도 분만실에 계속 남고, 아직 진행이 덜 됐으면 다시 방에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출산준비교실에서 가진통인지 진진통인지 헷갈릴 때 욕조에 물 받아놓고 들어갔을 때 고통이 완화되면 가진통이니 집에 있어도 되고, 심해지면 진진통이니 병원에 가라고 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나서 아직도 진행은 별로 안 됐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반전은 무려 5 – 6cm 가량 열렸다고! 욕조에 있을 때 양수도 터진 것 같다고 했다. 정말 편히 쉬고 있었는데 그때 이렇게 많이 진행이 됐다니. 이게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통증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는데, 기회가 있으면 욕조를 꼭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18:30

쌍둥이 산모가 있어서 내가 있던 방에서 출산해야 한다고 방을 옮겼다. 진통은 정말 세져서 거의 포효를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젠 호흡으로 참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 마지막에 힘을 풀어야 할 때 몸은 반대로 힘이 들어가서 내려놓는 게 불가능했다. 헤바메는 그럴 때는 몸의 감각을 믿으라고, 힘을 푸는 게 아니라 반대로 줘야 한다고 느끼면 그냥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통증이 오는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느꼈고, 아프면 막 소리도 질렀더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남편이 옆에서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헤바메는 진통제나 무통주사(pda) 필요하면 놔줄 수 있다고 하고는 자리를 떴는데 그때 다른 산모가 출산을 했는지 그 이후에 호출을 하니 다른 간호사가 왔다.

19:15

너무 고통스러워서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했다. 독일 출산후기 중에서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해도 계속 때가 아니라고 하다가 결국 못 맞고 애를 낳은 경우가 많다고 해서 미리 말해놔야겠다 다짐했는데 보통 5cm쯤 진행됐을 때부터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으니 지금이 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마취과의사가 5분도 안 돼서 왔다. 한 30분은 기다릴 줄 알았는데 웬일. 간호사도 놀랐는지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ㅎㅎ

무통주사를 받으려면 관련 서류를 작성해서 사인을 해야 하는데 (알레르기나 다른 질병 등이 있는지) 그건 출산병원 등록을 할 때 미리 받아서 다 기입해 왔다. 의사가 빠른 속도로 가능한 부작용들을 알려줬고 (당연히 귀에 안 들어옴. 모르겠고 빨리 놔줘!!) 발 받침대 같은 것을 침대 옆에 두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서 앞으로 몸을 숙여야 했는데 하나도 안 불편했고 순식간에 무통주사 삽입. 15분 정도 지나니 효과가 나타나서 통증이 사라졌다. 더 필요하면 무슨 버튼을 눌러서 양을 늘리라고 했는데 나는 출산 때까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통.천.국.

진짜 천국이 따로 없었다. 무통주사가 잘 안 듣거나 부작용이 있는 경우도 있다는데 나는 그저 좋았다. 너무 감격해서 남편한테 한국에서는 이걸 pda Himmel이라고 부른다고 굳이 번역해주고 한 다섯 번은 이거 너무 좋다고 이거 발명한 사람 노벨 평화상 줘야 한다고 ㅋㅋㅋㅋㅋ (내 마음의 평화를 지켜줌…) 정말 왜 그렇게 무통주사, 무통주사 하는 지 알겠더라는..

나를 담당했던 헤바메는 자신의 근무시간이 끝났다며 아이 잘 낳으라며 인사를 하고 갔고 새로운 헤바메가 왔다. 기존 헤바메가 너무 친절했기에 걱정했는데 새로운 헤바메도 정말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했다.

무통주사를 맞으면 진통은 안 느껴지지만 출산이 임박하면 아래로 가해지는 압력은 느껴질 거라고 했다. 진행되는 데까지는 몇시간 더 걸릴 수 있으므로 편히 누워서 쉬라고 했고 덕분에 거의 열시간만에! 드디어! 편히 누워 있을 수 있었다 ㅠㅠㅠㅠ 괜히 걱정돼서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빨리 진행되지 않아서 응급한 상황이 되면 자연분만 못 할 수도 있는 거냐고 물으니 오늘 내로 나올 것 같고, 그런 상황이 될 때까지는 시간상 아~~~주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원래 분만실에 들어오면 식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읽었는데 이렇게 저녁식사도 먹을 수 있었다. 점심도 못 먹고 남편이 가져온 달달한 간식만 조금 먹은 상태였는데 저기 스프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졌다ㅋㅋㅋㅋ그런데 배가 별로 고프지는 않아서 빵 한 조각만 먹고 나머지 한 조각은 남편에게 줬다.

몇시간을 누워서 편히 쉬었다. 가끔씩 헤바메가 들어와서 내진을 했고 최대한 힘을 빼고 있으라고 했다. 어차피 무통주사 때문에 통증이 느껴지는 건 아니라서 그건 꽤 수월했다. 내가 원래 내진을 할 때마다 힘이 빡 들어가서 항상 힘 빼라고 꾸중;; 들었는데 무통주사가 아니었으면 이 과정도 왠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2:00

무려 8cm가 열렸다고! 조금만 더 힘을 빼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잘 한다고. (저는 한 게 없는데요..그저 편히 누워 있을 뿐인데요..ㅎㅎ)

23:00

9cm가 열렸고 본격적인 힘주기가 시작되었다. 똥을 싸는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하는데 호흡법이 너무 어려웠다. 숨을 삼키면 안 됐나? 아니면 내쉬면 안 됐나? 아무튼 뭔가를 주의하면서 힘을 줘야 했는데 꼭 마지막에 머리에 힘이 들어가서 잘 안 됐다. 처음에는 헤바메가 잘 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다가 점점 말이 없어지는게 느껴졌다 ㅠㅠㅋㅋㅋㅋ 안되겠다 싶은지 헤마메가 다른 간호사들과 헤바메들을 불러서 갑자기 4, 5명이 방에 우르르 들어와서 내 배를 막 누르고 나는 안간힘을 주고. 그런데 그렇게 몇번 힘주기를 하다보니 너무너무너무 아프기도 하고 심리적으로도 포기하고 싶어졌다. 이제 아이를 만나기 직전인데 왜 안 되는 건지. 게다가 중간에는 과호흡이 와서 막 헐떡거렸는데 헤바메가 내 얼굴을 붙들고 눈을 뜨고 자기를 보라고 소리쳐서 눈을 뜨니까 갑자기 나아졌다. 그 전까지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남편은 옆에서 서서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면서. 그런데 힘든 와중에도 남편이 머리 쓰다듬어준 게 느껴지면서 힘이 됐다.

23:52

헤바메 말대로 그 날에 태어난 아기. 따뜻한 아기를 내 몸 위에 올려줬고 나는 감격해서 막 눈물이 나왔다.. 드디어 만났구나, 아가. 아기가 울었는지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태어난 직후의 아기는 못 생겼다는데 생각보다 안 빨갛고 생각보다 예뻤다. 다들 아기가 크다고 했는데 내 눈엔 너무 조그만해보였다. 아기가 어떻게 생겼을지 매우 궁금했는데 나와 너무 닮아서 약간 실망은 했었다. (아가 미안ㅋㅋ하지만 네 아빠가 내 눈에는 너무 잘생긴 걸 – 지금은 남편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ㅎㅎ) 남편은 나한테 “부모 눈에는 진짜 자식이 특별한가봐. 애기가 왜 이렇게 예쁘지?” 하면서 고슴도치 아빠의 모습을 보였고 태어난 직후의 사진을 정말 이상하게 찍어놓고서도 그 사진 예쁘지 않냐며 좋아했다. (하지만 다시 봐도 그 사진은 정말 아니야..ㅋㅋㅋ)

아기 탯줄은 남편이 자를 줄 알았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간호사가 잘랐다. 그래도 뭐 어때. 힘을 줬던 기억은 안 나지만 태반도 다 나왔다.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의사가 보여주면서 다 잘 나왔다고. 정말 거대하고 징그럽고 외계 생명체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으..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출산할 당시에 아래를 가리지 않아서 옆에 서 있던 남편이 다 볼 수 있었다. 혹시 트라우마가 생길지 모르니 보지 말라고 했는데 남편은 별로 상관 없었다고 했다. 그냥 어느 순간 보니 애기 머리가 뿅 나와 있었다고. 자기는 그것보다 태반의 모습이 너무 쇼킹했다고..ㅋㅋㅋ

의사가 다른 실습생(?)한테 설명을 하면서 회음부 상처를 꿰맸다. 독일은 회음부 절개가 필수가 아니라서 나도 절개를 하지 않았고 (관장하고 제모도 필수가 아니고 어쩌다보니 이 두개도 하지 않았다) 출산 과정에서 결국 찢어졌다. 심한 정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누는데 나는 2단계로 나름 양호한 수준에서 끝났다. 그런데 확실히 2주 가까이 앉아 있는 게 힘들었다.

02:00

다른 방으로 이동하고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했다. 아이가 잘 물지를 못 해서 유두보호기로 어찌저찌 먹였다. 잠시 기다리면 간호사가 와서 병실로 이동을 한다고 했는데 중간에 다른 산모 출산이 있어서 한참 후에나 왔다. 남편이 계속 아이를 안고 있었다.

03:00

병실로 이동을 하고 남편은 집에 갔다. 독일은 별 문제가 없으면 무조건 모자동실이라 아이는 내 옆에 있는 Beistellbett에 눕혀졌고 그렇게 우리의 첫날 밤이 시작되었다ㅎㅎ


이슬, 가진통부터 따지면 26시간이나 걸린 출산과정이어서 병원에 가자마자 두시간 이내에 애가 나온 초스피드 순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이전에는 아무 증상이 없었고 출산 과정에서 무통주사를 제외하고 인위적인 요소가 없었는데다가 양수가 미리 터져서 시간 압박이 있다거나 하는 등의 스트레스 요소는 전혀 없었던 출산이라 이만하면 순산이 아니었나 싶다. 헤바메들의 친절함과 전문성에 정말 감동 받았고 그래서 출산 과정 자체’만’ 따지면 독일에서의 출산이 좋았다. 만약 아기가 태어난 날이 공휴일이 아니라서 산모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면, 그리고 의료진도 더 많이 있었다면, 그래서 내가 16시 30분까지 겪었던 일을 겪지 않고 집에서 누워서 편히(?) 진통을 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그러나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부활절이라는 특별한 날에 태어난 우리 아기 :)

다음 포스팅은 병원에서 입원했던 이야기

 



독일에서의 임신, 출산 관련된 포스팅 링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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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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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Comments

11월에 독일에서 출산을 앞두고 있는 예비맘이에요. 글을 읽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찡… 저였어도 너무 서럽고 엉엉 울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아가 순산하신거 너무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11월이면 이제 임신기간도 절반 이상 넘긴 거네요. 이때 이후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던 것 같아요ㅎㅎ 남은 기간 문제없이 순조롭게 보내시고 아기도 뿅!하고 순산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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