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육아] 독일에서 산후조리를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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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를 겁내지 말자

한국에서는 산후조리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편이다. 임신 때부터, 그리고 출산 후에도 귀가 따갑게 (아님 눈이 따갑게?ㅋㅋ) 들었던 (읽었던?) 말이 출산 후에 산후조리 제대로 안 하면 평생 고생한다는 말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신체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라면 임신을 안 했더라도 산후 관리 잘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물론 걱정되고 잘 되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인 것은 알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데 옆에서 더 부추겨서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출산 후에는 몸도 정상이 아니지만 사실 마음도 정상이 아니다. 출산 과정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호르몬의 작용으로 제정신이 아니다. 뭐든지 더 극단적이고 나약하고.. 나는 그랬다. 특히 출산 후 3, 4일쯤 지났을 때부터 젖이 돌기 시작할 때가 정점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유없이 눈물 한 바가지부터 쏟아냈다. 손목이 아픈데 이제 평생 손목 못 쓰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 찬 바람 쐬면 뼈에 이상이 생기는 것 아닌가 지나치게 걱정했다. 지금 당장 아파서 힘든 것보다 이러다 평생 불구가 될 것 같은 공포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특히 한국인이라서 다르다, 독일인들은 더 튼튼해서 그렇다, 이런 말들. 정말 그럴까? 그러면 왜 비슷한 신체 구조일 것 같은 일본에는 산후조리원이 흔하지 않을까. 공포심에 사로잡혀 이제 나는 끝났다, 앞으로 내 몸은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우연히 찾았던 아래 유튜브 영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 출산 전에 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늦게라도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혹시 해외에서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말 꼭 봤으면 좋겠다.

내가 이 영상에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말은 “출산했다고 중환자가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나의 좌절과 공포심을 이겨낼 수 있게 한 말이었다. 물론 몸이 아프다. 그러나 회복이 필요할 뿐, 중환자가 된 것은 아니다. 두달이 되어가는 지금? 생각보다 몸이 멀쩡하다.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극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내가 괜찮았다고 남들도 다 괜찮다는 일반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음을 편히 가지자. 다리를 다쳐서 기브스를 할 수 있지만 다리를 다쳤다고 바로 다리 절단을 하고 평생 불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독일에서는 옛날에 이 산욕기(출산 후 6주 정도의 기간)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오히려 요즘에서야 푹 쉬고 회복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출산준비교실에서 얘기할 때 그냥 잘 쉬고 무리하지 말라고 했을 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 고생하고.. 이런 얘기는 전혀 없었다. 남편이 한국인이 아니라면 잘 모를 수 있으니 출산 전 임신기간 때부터 출산 후 한두달은 몸을 쓰기 어려우니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고 미리 말해두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동양인이 선천적으로 출산과 회복이 서양인보다 어렵다는 말이 정말 과학적으로 근거 있는 말인지 약간 의문은 들었지만 남편한테 말할 때는 나는 한국인이니까 더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ㅋㅋㅋㅋ독일인들이 더 튼튼하고 예후가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인들의 대화방식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개인차가 있지만 경향적으로 나를 포함한ㅋㅋ 한국인들은 얘기를 나눌 때 tmi가 심하고 사실적으로 말하는 반면, 독일인들은 그냥 ‘괜찮았어. 좋았어.’하고 퉁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엄살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게 싫은 건지. 실제로 내가 직접 임신, 출산하기 전에 주변에 이미 아이를 낳은 독일인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냥 괜찮았어, 아직 조금 회복은 덜 됐지만 잘 지내고 있어 등의 말을 했는데 막상 내가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니 조금 더 디테일한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도 관절과 골반 문제로 고생한다. 그걸 일일이 다 말하지 않을 뿐. (다만 산후풍 얘기는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다. 뼈가 벌어지고 찬 거 무조건 피해야 하고 이런 얘기도.)

출산을 앞두고 있는 지인이 있다면 나는 산후조리를 잘 하라는 말 대신 다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기와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라고 말하고 싶다. 


독일에서의 셀프 산후조리를 선택한 이유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서의 자가격리와 독일인 남편의 입국이 복잡해진 것도 있었지만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출산을 위한 한국행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독일에 오시는 것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산후조리원 시스템 자체가 그다지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으면서 평가하는 게 좀 그렇지만, 네이버로 후기를 읽으면서 산후조리원이 정말 산모에게 좋은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부러웠던 것은 최상급으로 나오는 밥과 마사지가 있다는 것 정도? 신생아실에 아기를 맡겨놓는 것이 공감이 잘 가지 않았고, 소위 수유콜이라고 해서 모유수유하러 이동하고 또 유축도 하는게 (사실 아직도 내가 산후조리원에 가보지 않아서 이해가 안 가는게 유축은 왜 따로 하는거지? 그럴거면 직수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오히려 산모에게 엄청 불편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기가 옆에 있으면 그냥 들어서 먹이면 되는데 일부러 다른 방에 걸어가야 한다? 심지어 다른 층에 있는 경우는 이동이 더 많고.

하정훈 선생님의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그분이 강조하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24시간 모자동실이다. 그래야 모유수유도 잘 할 수 있고, 아이의 여러 신호를 더 잘 알아차릴 수 있어서 육아 자체가 더 수월해진다고. 하시는 말씀이 너무 교과서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독일에서 출산과 육아를 하면 사실 딱 주장하시는 그 방법대로 된다. 그러나 한국의 산후조리원 시스템에서는 그걸 지키는 게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모유수유가 중요하다고 스트레스는 엄청 받는데, 정작 산후조리원 시스템에서는 모유수유가 성공하기 어렵달까. 모유수유를 성공하고 싶으면 그냥 무조건 직수가 답이다. 그런데 산모 쉬라고 유축수유나 분유보충을 하면 나중에 더 어렵다. 모유수유를 안 할 거면 상관없는 것 아닐까 싶은데 그러면 그냥 남편이 분유를 먹이면 되는 것 아닌가. 24시간 모자동실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럴거면 굳이 왜 산후조리원에 가냐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고. 그 비싼 돈을 주고 ‘쉰다’는데 그게 정말 제대로 쉬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기를 집에 데리고 오는 순간 아무리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를 케어하는 법을 배웠더라도 갑자기 백프로 셀프로 아기를 케어하는 게 부담스럽게 와 닿을 것 같았다. 갓 태어난 아기와 몇주 된 아기는 느낌이 확 다르다. 갓 태어난 아기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어서 0에서 시작하는 느낌인데 몇주 지나면 10 정도가 된다고 하면, 처음부터 집에 데리고 온 경우 부모는 0에서 같이 시작해서 조금씩 변화에 맞춰 적응하면 되는데 산후조리원에 갔다가 오면 기껏해야 5 정도에서 갑자기 적응하느라 힘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남편과 둘이서의 육아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비행이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 엄마 몸도 안 좋으신데 와서 내 산후조리를 돕는 것이 힘들 거라는 판단도 있었지만, 이제 아이가 태어나서 셋이서 한 가정을 이루는데 다른 사람이 같이 생활하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았다. 장기적으로 대가족을 이루고 살 것도 아니니까.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 거의 15년이 넘었고, 같이 사는 남편이 나에게 잔소리나 지적을 절대 안 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누가 나에게 잔소리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한국 산후도우미가 파견오거나 독일에서도 간혹 구할 수가 있다던데 그것도 고려하지 않은 이유도 같다. 한국식 오지랖에 익숙하지 않은 남편은 더욱 힘들테고.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남편과 둘이 같이 고군분투하며 소위 전우애가 생겼고 힘들기도 하지만 함께 웃을 일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모두 ‘아기가 원하는대로 된다’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아기가 원하는대로, 상황이 되는대로 그에 맞춰서 육아를 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헤바메에게 조언을 구해서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육아를 하는 데에 있어서 처음부터 우리가 부모로서 주도권을 갖고 결정을 해나갈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냥 상황에 따라 남들이 그렇게 한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누가 말하니까 휩쓸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기와 계속 붙어 있다보니 아기가 뭐를 원하는지 파악하기도 훨씬 수월해졌던 것도 큰 장점이었다. 처음 며칠은 정말 힘들기는 했으나 오히려 그만큼 적응이 되어서 그 이후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 물론 이것은 지나친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ㅎㅎ

독일에서 산후조리를 할지 말지는 독일에서의 출산그 이후의 입원을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과 함께 가기 때문에 무작정 추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한다면 독일에서의 출산은 조금 고려해볼 것 같다. 의사들이야 웬만큼 영어를 하겠지만 출산과 입원 과정에서 더 많이 마주치는 것은 헤바메와 간호사들인데 이들이 독일에서는 그렇게 고학력자들이 아니라서 영어를 잘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면 산모 입장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어차피 출산과정과 그 이후가 어떨지 예상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여러가지 장단점을 고려해서 결정을 하면 된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든 그게 최고의 결정이다. 무조건 부모가 옳고 아기가 옳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ㅎㅎ

다음 포스팅에서는 산후조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한번 적어보려 한다.

혹시나 해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산후조리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쓰기는 했지만 절대로 그걸 선택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처럼 산모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유난 떤다거나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회복을 빨리 해서 그만큼 육아에 전념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일 수도 있으니.  이 글은 어디까지나 독일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쓰는 것이므로 분명 한국에 적용이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아니, 적용 불가능하다. 다음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쓰겠지만, 반드시 가사를 대신 신경써줄 사람,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체크해 주고 아이 케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독일에 살면 남편의 육아휴직이 자유롭고 휴가도 훨씬 많고, 헤바메라는 산후도우미가 있는 매우 좋은 시스템이 있어서 그게 가능하다. 독일에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한국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고 참고만 하면 좋을 것 같다. 나라마다 산후조리문화가 다른 것은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기에 정답은 당연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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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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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Comments

언니의 정말 생생한 후기 잘 보고 있답니다!!

고마워 :) 글 쓰는 보람이 있구만ㅎㅎ

지금 제 상황에 너무 너무 너무 도움이 되는 글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 현재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출산을 한 상황이실텐데 힘내세요! 예쁜 아기 보면서 행복한 시간 보내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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